서로를 좀먹다 향으로 사라지는… 나프탈렌 같은 인생

    입력 : 2012.09.29 03:14

    나프탈렌
    백가흠 장편소설|현대문학|307쪽|1만3000원

    옷장 속에 꼬깃꼬깃 나프탈렌 뭉치를 넣는다. 아끼는 옷이 좀 슬어 상할까 봐 행하는 주술. 코를 찌르는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지만, 한 계절이 지나 옷장 문을 다시 열면 덩어리는 사라지고 알싸한 향만 은은하게 퍼진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등 단편에 힘써 온 소설가 백가흠(38)이 아득바득 살아내려 애쓰지만 나프탈렌처럼 향으로 남고 마는 유약한 인간들의 쟁투를 300쪽짜리 서사로 펼쳐냈다. 등단 12년차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배경은 전주 근처 만공산(滿空山) 속 하늘수련원이다. 폐암에 걸린 40대 여성 이양자는 수련원에서 노모 김덕이 여사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요양 중이다. 생기를 찾아가는 양자와 달리 김 여사는 온몸에 퍼진 암덩어리로 서서히 망가져 간다. 한편 정년 퇴임을 눈앞에 둔 대학교수 백용현은 20대 중반의 조교 공민지의 몸을 갈망하지만, 공민지는 5년 전 양자의 남편과 내연 관계를 맺고 양자의 집에까지 찾아왔던 당돌한 여성. 30년 만에 재회한 전 부인 손화자의 죽음을 통해 삶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백용현은 수련원에 들어와 살며 죽음의 공포를 턴다.

    여러 개의 단편으로 나눠도 좋을 만큼 완결성 높은 이야기 구조가 장점. 각각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 인물들 사연이 뒤섞이면서 생과 사가 병존하는 인간 삶의 본질을 파고든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