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의 두 얼굴 '인센티브' 때문이야

    입력 : 2012.10.06 02:39

    경제학·정치학 박사, 동서고금 국가 해부
    국가 번영의 열쇠는 사유재산·공정 경쟁… 권력 분산 보장하는 '포용적 정치·경제'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변론서로 읽히기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로빈슨 지음|최완규 옮김
    시공사|704면|2만5000원

    "나는 미래를 봤네. 잘 돌아가고 있더군."

    1차 대전 직후 모스크바를 다녀온 미국 언론인 링컨 스테펀스(1866~1936)가 말했다. 신생 공산국 소련에 대한 기대감이 흠뻑 묻어났다. 당시 서방에는 소련에서 '미래'를 본 사람이 적지 않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도 대학 교과서(1961년판)에 '소련 국민소득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며 그 시기가 1984년이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고 1997년이면 거의 확실시된다'고 썼다.

    하지만 기세 좋던 소련 경제는 1970년대로 오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다시 분석이 시작됐다. 소련의 초반 고속성장 비결은 별 게 아니었다. 스탈린식 집중경제는 그저 가진 생산력을 한곳에 몰아넣은 결과였다. 정부 통제로 공업을 키우는 동안 농민의 희생은 끔찍했다. 600만 명 가까이 굶어 죽었고 강제 집산화 과정에서 수십만 명 이상이 피살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당했다. 얼마 못 가 소련은 해체의 길을 걸었다. '수탈식(extractive)' 정치·경제제도는 '반짝 성장'은 가능케 했지만 지속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왜 어떤 나라는 번영을 구가하고, 어떤 나라는 지리멸렬한가. 책은 국가 흥망사라는 거대 질문에 답하려 한다. 로마 제국부터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사례를 MIT 경제학과 교수와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짝을 이뤄 케이스 스터디 하듯 해부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빌딩숲(사진 위)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빈민촌. 남·북미의 빈부 격차는 상이한 식민지 제도에서 유래했다. 남미에선 식민 모국 에스파냐의 수탈식 제도가, 북미에선 영국의 인센티브를 활용한 포용적 제도가 기원이었다. /로이터 뉴시스

    결론은 명료하다. 포용적인(inclusive) 정치·경제제도의 유무가 국가 흥망을 결정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란 사유재산권과 공정 경쟁을 보장하고, 혁신과 투자를 장려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포용적 정치제도'란 법·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중앙집권화를 이뤘으면서, 정치권력이 사회 여러 계층에 고루 분산된 것을 말한다. 우리로선 익숙한 내용이다. 책에서도 남북한이 주요 사례로 소개된다. 그럼에도 책을 주목하는 이유는 풍부한 실례를 통해 세계 불평등에 관한 의문을 적잖이 해소해 준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남·북미의 고질적인 빈부 격차다.

    ◇북미는 잘사는데 남미는 못하는 이유

    남·북미 접경지대의 노갈레스시는 담장 하나가 남북을 가른다. 북쪽은 미국 애리조나주, 남쪽은 멕시코 소노라주. 하나의 땅이지만 남북 주민의 삶의 질은 딴판이다. 연평균 가계 수입만도 북쪽은 3만달러, 남쪽은 그 3분의 1 수준이다.

    같은 대륙의 남과 북이 왜 이리 다른가. 제도의 차이다. 저자는 식민지 유산으로 설명한다. 1519년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침략을 시작한 이래 에스파냐는 원주민의 땅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방식으로 남미를 정복해갔다. 에스파냐 왕실과 더불어 정복자들과 후손들은 막대한 부를 누린 반면 원주민은 밑바닥 삶을 전전했다.

    반면 북미는 후발 주자인 영국 차지였다. 1607년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정복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멕시코·페루처럼 은(銀)이 많지도 않았다. 흩어져 사는 인디언을 강제노역시키기도, 식량을 뺏기도 어려웠다. 살아남으려면 자구책이 필요했다. 식민지 개발을 맡은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인센티브 방식을 택했다. 개척민 남성에게 땅을 분양해 개척하게 했다. 나폴레옹 침공으로 에스파냐가 몰락했을 때 남미의 권력 공백을 독재자들이 메운 반면, 북미는 남북전쟁 이후 헌정질서가 자리 잡아갔다. 그 후 미국은 경쟁을 통해 번영을 구가한 반면 남미는 특권과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내전과 쿠데타가 교차했다.

    ◇왜 번영을 택하지 않나

    포용적 경제·정치제도가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낳는 '창조적 파괴'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로마 공화정 몰락 직후의 일화가 웅변한다. 한 사내가 로마 성채인 카피톨리누스 언덕으로 돌기둥을 운반할 수 있는 기구를 개발했다며 황제를 찾아갔다. 수천 명의 노동력과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발명이었다. 하지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거부했다. "그럼 백성을 어떻게 먹여 살리란 말인가". 권력자로서는 일감이 사라지고 난 후의 정치 불안이 더 걱정이었다. 158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양말 짜는 틀' 발명자에게 특허신청을 거부한 것도 같은 심리에서였다. 한때 시계·나침반·화약·종이 등의 기술 혁신으로 앞섰던 중국의 황실도 더 이상의 '창조적 파괴'는 꺼려 해외 무역에서 눈을 돌렸고, 그 사이 유럽은 세계를 개척했다.

    ◇산업혁명 이후 엇갈린 세상

    저자는 오늘날 세계 불평등의 구도가 대체로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18세기 후반에 태동했다고 본다. 선구 모델은 영국이었다. 명예혁명은 세계 최초로 포용적 정치제도를 구현했다. 왕과 가신의 권한이 약화되고 경제제도를 결정할 권한이 의회에 귀속됐다. 의회는 투자와 거래 혁신을 유도하는 경제제도를 채택했고, 이때 확립된 특허권 등이 발명과 산업혁명을 낳았다.

    영국 모델은 서유럽과 북미, 호주, 뉴질랜드 등 '정착 식민지들'로 전파됐고, 나중에 일본·싱가포르·한국·대만·중국 등 아시아로도 확산됐다. 다른 세계도 산업화 물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

    나라의 명운을 결정하는 것은 타고난 지리나 자연환경도, 문화도, 특정 정책도 아니다. 역사 속에서 정치적 선택에 의해 형성된 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서 말하는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란 것도 실은 '자유민주주의'에 근접한다. 오늘날 세계 양극화의 주범으로 자본주의가 난타당하는 와중에 시장경제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변론서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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