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완벽'이 동포 1만2000명을 죽였다

    입력 : 2012.10.06 02:38

    1970년대 캄보디아 공산혁명 집권 당시 악명의 고문관 '두크'… 30년 뒤엔 피고석에

    자백의 대가

    티에리 크루벨리에 지음|전혜영 옮김
    글항아리|532쪽|2만2000원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나든 국민이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것입니다."

    대선 후보가 한 말이 아니다. 법정에 선 피고인, 그것도 동포를 1만2000여명이나 학살한 범인이 이렇게 말했다.

    크메르루주 집권 기간(1975~1979) 중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의 S-21 교도소장으로 1만2000여명을 학살한 범인 두크(70)의 재판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프랑스 저널리스트로 르완다, 보스니아 등의 전범 재판을 취재해온 저자는 2009년 3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진행된 국제재판 과정을 슬로모션을 돌리듯이 묘사한다. 법정 구석구석의 풍경부터 피고인, 증인, 재판관, 변호사, 검사의 심리 상태까지 치밀하게 재구성함으로써 괴물로 변한 한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완벽한 모범생

    중국계 캄보디아인으로 수학 교사 출신인 피고는 완벽한 학생, 교사였다. 공부를 잘했을 뿐 아니라 친구들의 공부를 도와줬으며 교사로 임용된 후에는 학생들에게 공짜로 과외를 시켜줬다. 시간을 엄수하고, 정해진 기한 내에 임무를 완수하는 성실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 사범학교 재학 중 공산주의에 매료돼 마르크스·레닌도 아닌 마오쩌둥주의에 빠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엘리트에 충성심, 열정 그리고 극우정권에 의한 투옥 경력까지 두루 갖춘 그가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S-21 교도소장으로 발탁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그 4년이 문제였다.

    재판을 받고 있는 두크(가운데 서 있는 사람). 그는 교묘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그의 죄상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글항아리 제공
    살인 공장 S-21 교도소

    S-21은 일단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수감자들은 사실이든 아니든 반역한 사실과 공모자를 자백해야 했다. 원하는 자백이 나올 때까지 전기 고문, 손톱 뽑기, 물 먹이기, 채찍질, 배설물 먹이기까지 고문이 이어졌다. 말로 협박하는 '차가운 팀', 고문하는 '뜨거운 팀', 양쪽을 섞은 '저작(咀嚼)팀'이 교대하며 자백을 끌어냈다. 일단 자백을 마치면 구덩이로 끌고 가 굴대로 목을 내리친다. 피해자 유가족들이 "가스로 죽인 아우슈비츠가 차라리 낫다"고 울부짖는 야만의 현장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총지휘한 것이 두크였다. 그는 '자백을 받아내는 대가(大家)'였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이상은 현실에서 지옥을 만들었고, 그 현장에서도 두크는 가장 '효율적'으로 배신자를 가려내고 처단한 모범생이었다. 그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진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 베트남군의 침공 때 야반도주하느라, 꼼꼼히 정리해 놓은 엄청난 양의 자백 서류를 그대로 남겨두고 말았던 것이다.

    이상한 재판

    재판은 맥 빠진 채 진행되는 듯했다. 크메르루주 정권 붕괴 후 개신교 선교사로 위장해 지내다 1999년 체포돼 10년 후인 2009년 국제재판에 회부된 두크는 초장에 자신의 혐의를 실토하는 것 같았다. 첫 공판 때부터 "제가 1만2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는 데 함께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30년 전 사건을 재생했다. 피해자들의 가물가물하는 기억을 바로잡기도 하고, 혐의를 부인하는 부하에겐 "코끼리를 바구니로 가릴 수 없다"는 속담까지 들먹이며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거듭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달게 받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백의 대가'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위에서 시킨 일"로 교묘하게 발뺌했다. 고문이나 사형 현장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직접 죄수를 때린 적이 있는데, 그중 한 건은 "맞고 나서야 자백한 죄수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사 측에 의해 징역 40년이 구형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99년부터 10년 하고도 6개월, 18일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풀어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하지만 법정은 그에게 30년 형을 선고했다. 두크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으나 올 2월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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