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먹고, 수화도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입력 : 2012.10.20 03:06

    동물실험 프로젝트로 왕자처럼 길러졌다가 사육동물로 전락했던 한 침팬지의 수난사
    인간의 욕심에 대한 반성의 시각 보여줘

    님 침스키
    엘리자베스 헤스 지음|장호연 옮김|백년후|448쪽|2만2000원

    잠자는 침팬지 얼굴에 커다란 점을 그려 넣었다고 치자. 깨어난 그가 어슬렁거리다 거울 앞에 선다. 화들짝 놀란 짐승은 점을 지우려 하면서 누가 이런 장난을 쳤는지 찾는다. 침팬지, 오랑우탄 등 유인원(類人猿)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 원숭이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침팬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DNA로는 98.7%가 일치한다. 침팬지 이름이자 동물실험 프로젝트인 '님 침스키(Nim Chimpsky)'는 불행히도 그 닮음 때문에 시작된 드라마다. 이 책은 대도시 뉴욕에서 인간의 손에 자랐다가 버림받은 어느 침팬지의 수난사다.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다

    님 침스키라는 이름부터 삐딱하다. 유명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를 향한 조롱이 담겨 있다. 침팬지에게 언어 교육을 시도한 님 프로젝트는 '언어는 인간에게만 내재된 능력'이라는 촘스키의 핵심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실험을 이끈 행동심리학자 허버트 테라스는 인간과 비(非)인간을 나누는 언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 종(種)들 사이의 소통을 보다 믿을 만하고 과학적인 토대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님은 1973년 11월 미국 오클라호마의 영장류연구소에서 태어나 열흘 만에 뉴욕 웨스트 78번가의 일반 가정으로 옮겨졌다. 허버트의 제자로 님의 첫 대리모였던 스테파니는 이 수컷 침팬지를 친아들처럼 길렀다. 기저귀를 채우고 옷을 입히고 양치질을 해주고 때론 젖도 물렸다. 생후 2개월부터는 수화(手話)를 가르쳤다.

    님이 처음으로 익힌 수화는 '마시다(drink)'. 주먹을 쥐고 엄지를 앞으로 내민 다음 부드럽게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이었다. 2주가 지나자 님은 어떤 암시 없이도, 동작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마신다'는 신호를 보냈다. 두 달 만에 '주다' '위' '달콤한' '더 많이'를 터득했다.

    ◇그래도 님은 침팬지였다

    사람 옷을 입고 포크로 스파게티 먹는 법을 배운 님은 사람 다루는 기술도 뛰어났다. 하지만 첫 생일을 맞기도 전에 녀석은 동물성(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통제와 예측은 점점 어려워졌다. 스테파니의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면서 님은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비용도 골칫거리였다. 컬럼비아 대학 교수였던 테라스는 방송과 신문에 님을 노출하면서 프로젝트를 알렸고, 후원금을 타냈다. 님은 언어 수업을 중심으로 빡빡하게 바뀐 일상을 견디기 힘겨워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물어뜯으며 난폭해졌고 '새 엄마들'은 자꾸 떠나갔다. 프로젝트는 연구비도 끊기면서 뚜렷한 성과 없이 4년 만에 중단된다.

    님 침스키는 태어나 4년을 뉴욕의 가정집에서 살았다. ①설거지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접시를 종종 깨뜨렸다 ②뉴욕 웨스트 78번가 집에서 대리모 스테파니의 아들처럼 자랐다. ③학생들에게 수화로‘고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백년후 제공
    님은 오클라호마의 영장류연구소 사육실로 돌아왔다. 실험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님의 여생은 외롭고 어두웠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의학생체실험을 하는 연구소로 팔려갔다 구출되기도 했다. 동물의 언어와 문화를 그 자체로 이해하려 하는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동물윤리학이 왜 필요한지 역설해주는 스토리다.

    테라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님의 삶보다는 데이터를 더 중시했다. 마지막에 텍사스 동물보호소로 님을 데려온 클리블랜드 에이모리는 동물을 사랑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님을 더 고립시켰다. 동료가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침팬지의 특성을 몰랐고 직원들이 님과 수화로 대화하는 것을 막았다. 님은 실험실에서도 보호소에서도 존중받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인간에 대해 말하다

    이 책은 2000년 동물보호소에서 심장 폐색으로 쓸쓸하게 죽을 때까지 님 침스키가 지나온 삶을 되밟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님과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님이 인간과 함께 살고, 매트리스에서 좋아하는 담요를 덮고 자고, 아침을 먹으며 수화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뉴욕에서 지낸 4년은 물론이고 말년을 보낸 여러 시설에서 그를 돌본 이들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뉴욕에서 왕자처럼 길러진 님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사육동물로 전락했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님이 습관적으로 수화를 했지만 이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님의 드라마는 최근 '프로젝트 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상영되기도 했다. 이 책은 영화에는 없는 일화와 사람을 풍부하게 담아냈지만 기대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구체적인 자료 없이 증언에 의존한 점, 평이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흠이다. 침팬지의 실화를 통해 동물을 이해하는 방식을 반성하게 하는 시각은 매력적이다. 어쩌면 님 침스키는 인간의 욕심과 본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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