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인간·못하는 늑대… 누가 더 우월한 존재인가?

    입력 : 2012.11.10 03:08 | 수정 : 2012.11.10 04:42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지음ㅣ강수희 옮김
    추수밭ㅣ344쪽ㅣ1만5000원


    스물일곱 철학자 마크 롤랜즈(Rowlands)가 집에서 늑대를 키우겠다 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놀랐다. 그러나 롤랜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생 늑대라도 훈련만 하면 목줄 없이 걷고, 공공장소에도 동행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늑대. 지독히 안 어울리는 두 생명체가 10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겪는 에피소드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진짜 매력은 이론의 껍데기만 남은 인간의 철학을 생동하는 동물의 가치관으로 전복해 들여다본다는 것.

    롤랜즈는 강의실이든 럭비 경기장이든 늑대 '브레닌'을 '개'라고 속이고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쳤다.

    롤랜즈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홉스가 주창한 계약의 관점에서 브레닌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둘의 '국가'는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상호주의 원칙 위에 서 있다. "매일 산책시켜줄게, 카펫에 실례만 하지 말아다오"라고 합의(?)하는 식이다.

    늑대 브레닌의 딸 테스(오른쪽)가 저자의 첫 아들 브레닌이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다. /추수밭 제공
    초반에는 인간인 롤랜즈가 브레닌 우위에서 그를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길들여지는 쪽은 롤랜즈다. 롤랜즈는 브레닌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걸 알고 '인간은 과연 동물보다 우월한가'라고 묻는다. 롤랜즈의 저녁식사를 몰래 싹 먹어치워버린 사실을 롤랜즈에게 들키는 순간, 브레닌은 그대로 얼어버린다. 인간이라면 '내가 안 그랬어' 혹은 '와 보니 저렇게 돼 있었어' 등 다양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동물은 안 그런다. 롤랜즈는 "늑대도 개도 사람에게 거짓말을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톡 쏜다.

    단순히 다른 종과 종 차원을 넘는 교감을 나누고 우정을 맺고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성과 지성은 인간만의 뿌리로 간주돼 왔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삶의 역동성과 야성을 잃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 그렇다면 철학이 신봉하는 이성과 지성은 철학의 근간이 될 수 있을까. 이론만 남은 철학에 동물들의 원시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철학의 궁극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해주는 게 이 책의 참된 가치다.

    롤랜즈는 왜 개나 원숭이가 아닌 늑대의 이야기를 풀어낼까. 늑대는 전 세계 고전 민담에서 인간 영혼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삶은 강자로부터 약자를 솎아내는 냉혹한 과정. 하지만 롤랜즈는 브레닌이 자기만큼 크고 공격적인 개체와만 싸우는 것을 보고 늑대가 사실은 인간보다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극도의 잔인함을 대변하는 동물에게서 정반대되는 성향을 보여줌으로써 야생이 지닌 순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브레닌은 11년을 살다 대장균에 감염돼 죽었다. 누가 똘똘한 철학자 아니랄까봐 롤랜즈는 에피소드 하나를 풀 때마다 비트겐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 등 유명 철학자들의 이론을 끌어들이지만 엮고 버무리는 솜씨가 쉽고 차져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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