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고 불러도 될까요, 선생님

    입력 : 2012.11.10 03:08

    사제지간으로 만나 文友로 발전했던 카뮈와 그르니에
    30년 간 편지 통해 서로의 글 평하고 성찰과 사유 나눠

    카뮈-그르니에 서한집(1932~1960)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지음|김화영 옮김|책세상|460쪽|1만7800원

    "잠시 후면 '투우'가 끝날 것입니다. 황소가 죽었으니까요. 아니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애정 어린 인사를 전하며. A.C."

    1957년 12월 13일,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한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엽서에 이렇게 급히 적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참석해야 하는 파티 같은 의례적 모임이 지겹다는 뜻이었다. 수신자는 장 그르니에(1898~1971).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철학교사였던 장 그르니에가 제자 알베르 카뮈를 처음 만난 건 1930년 10월. 담임과 반 학생 사이였다. 소르본에서 수학하고 철학분야 대학교수 자격증을 획득한 그르니에는 아비뇽·나폴리 등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알제의 학교에 부임했다. 하지만 그해, 카뮈는 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다. 담임은 제자의 병문안을 위해 서민동네 벨쿠르를 찾았다. 1960년 1월 4일 교통사고로 카뮈가 죽을 때까지 계속됐던 우정의 시작이었다.

    알제 빈민구역의 병약한 소년과 젊은 교사로 만나 시작한 인연을 30년 동안 이어준 것은 편지였다. 남아 있는 편지만 235통. 카뮈 112통, 그르니에 123통. 20대 후반 한때 분노 조절에 실패했던 카뮈가 불태워버린 두 박스의 편지는 제외한 분량이다.

    카뮈가 성장하면서, 둘의 관계는 사제(師弟)에서 문우(文友)로 변화한다. 카뮈는 새 책과 새 글을 쓸 때마다 철학자이자 위대한 작가인 스승의 반응이 궁금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르니에에게 물어왔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르니에는 자신의 산문집 서문을 제자에게 부탁했고, 사르트르와 지드 등 당대 지식인들에 대한 품평을 나눴다.

    30년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놀라운 것은, 카뮈보다 그르니에의 포용력이다. '따뜻한 회의주의자'로 불리는 이 성숙한 철학자는 이 긴 시간 내내 성찰의 대화를 이끌어간다. '이방인'을 쓴 재능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제자가 물론 자랑스러웠겠지만, 제자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스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신이 내게 신세 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나를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나이가 아주 어렸었다는 이유 바로 그것밖에 없습니다"(장 그르니에).

    "10월이 되면 제가 선생님을 만난 지 13년이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적어도 되겠지요. 선생님의 오랜 친구"(알베르 카뮈).

    카뮈의 말에 따르면 둘의 관계는 예속도 복종도 아닌, 대화와 교환이요 상호대조였으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이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산문집 '섬'을 펴냈을 때, 그 서문을 카뮈가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 스승은 흐뭇해한다."

    어쩌면 이후의 30년을 암시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인지도 모르겠다.

    23년에 걸쳐 카뮈 전집 20권을 완역해낸 고려대 김화영 명예교수가 새로 번역했다.

    카카오톡과 트위터 DM(Direct Mail)의 실시간 대화가 e메일마저 촌스러워 보이게 하는 2012년에, 옛사람들의 편지를 읽는 일이 얼핏 시대착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스피드와 효율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우리를 황폐화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 성찰과 사유의 느린 편지를 읽어야 할 이유를 굳이 한 번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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