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모녀 3대의 현대사, 명지현 '교군의 맛'

  • 뉴시스

    입력 : 2012.11.11 15:53

    '교군의 맛'
    "미각은 지문처럼 천차만별이지만 김이가 간절하게 원하는 맛은 분명했다. 그것은 화통하게 혀를 볶는 맛, 미친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는 맛, 울다 지쳐 혼절할 것 같은 맛, 뒷덜미를 찌르는 바늘 같고 심장을 관통하는 총알 같은 맛, 붉은 피를 머금은 맛 …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먹고 또 먹고 싶어지는 맛, 그것은 교군의 맛. 무얼 묵히고 무얼 까발릴 것인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30쪽)

    흥미로운 서사,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가 명지현(46)이 3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교군의 맛'을 펴냈다.

    교군, 소설의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그곳이다. 가마꾼들이 일하러 떠나고 돌아오던 곳,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 됐다. 여관과 식당을 겸한 소문난 한식집으로 재탄생했다.

    일제강정기와 6·25 동란, 4·19혁명과 5·16쿠데타와 1980년 광주,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거대한 왕국, 매일 독하고 매운 맛의 향연이 펼쳐지는 맛의 천국이자 감각의 제국, 인간과 시대의 욕망이 들끓는 곳이면서 그 욕망이 정화되는 장소가 바로 교군이다. 이곳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맛을 관장하는 '이덕은 여사'가 있다. 몸종 신분이던 그녀는 독한 손맛 하나로 교군의 주인마님 자리를 꿰찬다.

    그녀의 양딸 '배미란'도 있다. 빼어난 미모에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한 배미란은 짧게나마 '힛걸즈'라는 트리오로 활약했으나 연예계에 도사린 패악에 이용당하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미란이 낳은 딸 '손김이'가 교군의 마지막 후예가 된다.

    '교군의 맛'은 1대 이덕은 여사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치명적인 맛'의 비밀과 함께 2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3대 손김이의 여정이기도 하다.

    장소와 섭식이라는 행위를 원초적으로 주무르는 다양한 음식들, 교군 삼대를 아우르는 시대와 인간사의 여러 욕망들을 신명나고 활달하게 풀어낸다.

    시인 김정환은 "억울한 죽음의 발굴이 단순한 고발을 넘어 어떤 생보다 더 생생하게 지나간 시대와 전 세대를 바로 눈앞에 재생한다"면서 "음식의 살림 이면을 이루는 죽음 차원을 불러내 겹침으로써 음식 미학을 명작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일도 시도했다"고 읽었다. 384쪽, 1만3000원,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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