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아, 내 발끝만 봐라" 사랑채의 정치학

    입력 : 2013.01.05 03:04 | 수정 : 2013.01.05 10:09

    사랑채의 높은 기단, 계급 의식 드러내
    서원의 좁은 계단은 겸손과 경외심 강제
    '정치적' 건축이란 독특한 시각으로 엮어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이상현 지음|효형출판|312쪽|1만8000원

    "건축은 정치다."

    건축학자 이상현 명지대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거창하게 히틀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의 건축은 우리를 여러 방법으로 '길들인다'는 것이다. 문 높이에 따라 허리를 숙여야 하고,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하고, 담장과 개울을 피해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길을 멀리 돌아가는 우리를 떠올리면 간단하다.

    전통 한옥의 사랑채는 감시탑이었다. 남자 주인의 공간인 사랑채는 행랑채·안채보다 높게 기단을 쌓았다. 기단은 '키높이 구두'다. 사랑채에서는 머슴들의 행랑채와 부녀자들의 안채 그리고 뜰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담장 너머 들판의 논밭도 보인다. 생활과 노동 현장까지 모두 감시와 통제가 가능했다. 행랑채 누마루와 마당의 높이 차이는 곧 계급 차이다. 같은 공간에 들이되 "너는 내 발만 봐라" 하는, 다른 높이를 강요한 것이다.

    서원(書院) 건축에선 계단도 활용된다. 성현을 모신 제사 공간에 오르는 계단은 대부분 디딤판 폭이 무척 좁고 경사는 가파르다. 돌이 부족해서? 아니다. 좁은 디딤판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자연히 몸을 옆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조심하는 자세, 겸손, 경외심을 물리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움을 준 명나라 신종을 모신 충북 괴산 만동묘. 계단이 너무 가파르고 좁아 자연히 몸을 옆으로 돌려 조심스럽게 오르내리게 만든다. /효형출판 제공
    같은 높이라도 가까이서 보면 훨씬 웅장해 보인다. 불국사 수학여행 사진을 생각해보자. 청운교·백운교를 정면에서 촬영한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왼쪽 30도 정도 각도에서 촬영한다. 앞 공간이 넓지 않아 정면에서는 불국사의 전모를 한 앵글에 담을 수 없기 때문. 불국사의 공간 분할과 급격한 높이 차이는 속세와 정토를 구분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서울 경복궁과 북경 자금성도 비교한다. 분명 자금성이 크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다. 궁의 면적만 보면 경복궁은 가로 세로가 각각 560m·870m, 자금성은 750m·960m이다. 높은 담과 좁은 골목 등은 자금성을 훨씬 높고 웅장하게 느끼게 하는 장치들이다.

    '길들이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진행됐다. 베를린필하모닉 콘서트홀은 기존의 건축 문법을 거스른다. 높은 기단을 올라가면 중앙 로비를 만나고, 이어 자기 자리로 찾아가는 문법 말이다. 이 콘서트홀은 스포츠 경기장처럼 여러 개의 출입문과 작은 로비들을 거쳐 좌석을 찾아가게 돼 있다. 이는 히틀러 시대의 건축을 통한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다. 독일 건축가 한스 샤로운(1893~1972)은 권위주의와 집단적 흥분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이런 건축 문법을 택한 것.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국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 대해 저자는 '노벨평화상감'이라 한다. 도저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곡선으로 구성된 외형이다. 흑인 폭동을 겪은 LA 시민에게 '과거' '기억' '어디서 본 듯한 건물'이 아닌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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