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못 파는 광고는 창의적이라도 쓰레기"

    입력 : 2013.01.05 03:05 | 수정 : 2013.01.05 10:15

    [人生에서 배운다 오길비] David Ogilvy1911~1999
    해서웨이 셔츠·도브 등 名카피 만든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
    간결하고 명료한 글로 상품의 내용 부각하고 소비자 관심 집중시켜
    자신만의 철칙 지킨 '광고의 교황' 평가

    무조건 팔아라
    케네스 로먼 지음|정주연 옮김|민음사|436쪽|2만5000원

    이 책에는 '도꼬마리'가 들어 있다.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있어 잘 달라붙는 열매 말이다. 데이비드 오길비(Ogilvy·1911~1999)가 뽑아낸 광고 카피와 그의 철칙 가운데 몇몇 실한 놈들은 옷이 아니라 정신에 들러붙는다. 거추장스럽기는커녕 반가운 도꼬마리다. 짐짓 모른 척 기억에 담아두고 싶어진다.

    1999년 뉴욕타임스는 오길비의 부음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현재까지 이 신문 첫 페이지에 부음이 쓰인 광고인은 아직 없다.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가장 큰 소음은 시계 초침 소리입니다"라는 카피를 쓴 자동차 광고, 맥스웰하우스 분쇄 커피에 붙인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다"…. 프랑스 경제지 '엑스팡시옹'은 산업혁명에 크게 이바지한 서른 명을 거명하면서 에디슨, 아인슈타인, 레닌, 마르크스 등에 이어 일곱째로 오길비의 이름을 올리고 '현대 광고의 교황'이라고 적었다.

    요리사·방문판매원으로 기초를 다지다

    오길비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낙제생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그는 프랑스 파리의 마제스틱 호텔 주방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며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출근 첫날 벽에 기대 감자 껍질을 벗기다 들었다는 호통. "똑바로 서. 네가 여기서 하는 일은 다 중요하다. 자부심을 가져라." 오길비는 주방 기구 세일즈맨으로도 능력을 발휘했다. 판매는 엄숙한 일이었다. 문틈에 발을 찔러 넣고 주부를 설득해야 했던 그는 나중에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다. 당신 아내이다. 그녀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1935년 광고계에 발을 들어놓은 건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형 덕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오길비는 초창기의 갤럽과 함께 영화 산업을 분석하며 관객이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영국 출신 오길비가 미국 소비자의 습성과 사고방식을 꿰뚫게 된 것이다. "미학과 광고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이다. 표현 기법 따위는 무시해야 한다. 상품을 팔지 못한다면 나쁜 광고다."

    괴짜, 광고에 이야기를 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광고는 라디오 방송과 잡지·신문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신상품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1948년, 오길비는 뉴욕 매디슨가(街)에 터를 잡았다. "자신을 광고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남을 광고하겠소"라고 말했던 그는 화술이 좋았고 험담도 잘하는 괴짜였다. 하지만 직업 정신은 투철했다. 오길비는 미국 광고에 들씌워진 사기꾼·약장수의 이미지부터 몰아내야 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빅 아이디어' 1탄은 작은 셔츠 회사 광고에서 나왔다. '해서웨이 셔츠를 입은 사나이'다. 오길비는 촬영장 가는 길에 약국에서 재미 삼아 산 50센트짜리 검은 안대를 모델에게 씌웠고 반응이 좋았다. 대중은 멋진 사내가 왜 한쪽 눈을 잃었을까 궁금해하면서 그 광고를 소비했다. 안대를 한 개·소·아기가 등장하는 광고가 나올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비누 도브도 그의 빅 아이디어 덕에 1등 브랜드로 도약했다. 처음에 "최초의 미용 비누로 산성도 알칼리성도 아닌 중성입니다"라고 전하자 주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길비는 비누 제조법을 꼼꼼히 연구하고 나서 이런 카피를 뽑아냈다. "도브는 4분의 1이 클렌징크림입니다. 세안하는 동안 피부에 크림을 바르세요." 클렌징크림을 플라스틱 도브 비누 틀에 붓는 모습을 보여준 TV 광고도 히트했다.

    민음사 제공
    "광고 내용이 기법보다 중요하다"

    오길비는 압축된 문체를 사랑했다.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명사와 동사만 남겨 간결하고 명료한 글을 쓰려고 애썼다. 그리고 나태를 혐오했다. 직원들 책상에 "눈을 높여 신(神)과 경쟁하시오" 같은 메모를 붙이며 독려했다. 카피가 마음에 안 들면 럼주를 마시고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들었다. 광고업은 전통적으로 작가들의 수입원이었다. '악마의 시'로 이름난 살만 루슈디도 한때 오길비앤드매더사(社)의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오길비의 광고 철학은 '말하는 내용이 기법보다 중요하다' '브랜드 이미지를 잊지 말라' '광고에서 재미는 금기(禁忌)다' '상품을 팔지 못하는 광고는 아무리 창의적이어도 쓸모없다' 등으로 요약된다. 1963년 오길비앤드매더에 입사해 그를 지켜본 저자는 "오길비는 오만함이 없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기비판적일 수 있었다"고 썼다.

    이 전기는 빽빽한 일화로 속을 채웠다. 인생의 굽이마다 이야기꾼 오길비의 철칙이 만져진다. 하지만 책의 구성은 헐겁고 산만하다. 골동품을 잘 그러모아 놓고 진열에 실패한 꼴이다. 오길비가 1991년 미국 광고인협회 연설에서 "매출을 올리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성전(聖戰)을 벌여 왔다"면서 들려준 구호보다 그를 더 잘 설명해주는 말도 없다. "무조건 팔아라(We Sell. Or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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