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여, 노여워 말라… 읽으면 다 풀리리

    입력 : 2013.01.19 03:03

    진실과 거짓 메커니즘 살린 에코 신작
    위조의 달인 시모니니 통한 지적 유희
    그 아래엔 속임수·기만에 대한 성찰도

    프라하의 묘지(전 2권)
    움베르토 에코 지음ㅣ이세욱 옮김ㅣ열린책들ㅣ각권 408, 392쪽ㅣ각권 1만3800원

    문제는 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아니었다. 19세기 유럽 정치·문화사의 친숙화 과정인 초반 90쪽만 돌파하면 순식간에 페이지 터너(page turner)로 돌변하는 이 흡인력 강한 소설은, 읽을 때보다 그 내용을 전달할 때 더 큰 두통거리를 안겨준다. 특정 내용을 얘기하면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리는 영화처럼, 자칫 잘못하면 이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스포일러(방해가 될 만큼의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파리에서 만났던 이 세계적 석학은, 공식 인터뷰 이후 한담 시간에 "독자에게 절대로 많은 정보를 주지 말라"며 윙크와 함께 신신당부한 바 있다.

    그러니 움베르토 에코(81)가 이 소설에서 사용한 19세기 대중소설 문체를 빌려 말하자면, "독자 제현들이여, 필자의 친절이 부족하다고 노여워 마시라. 이 모든 것은 이태리(伊太利·이탈리아)의 고매한 학자 에코 선생의 뜻일지니."

    1980년 '장미의 이름'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6권의 소설을 쓴 에코가 학자와 소설가로서 평생 일관성 있게 가졌던 호기심은 "뻔한 거짓말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였다. 실제로 '전날의 섬'과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제외한 4권의 소설 주제 역시 진실과 위조, 거짓의 메커니즘. 장편 '프라하의 묘지'에서 핵심 소재로 등장하는 위조문서는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다. 1920년대 이미 위조문서로 확인되기는 했지만, 나치들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할 때 근거로 삼았던 자료였고, "유대인들은 세계 정복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음모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문서이기도 하다.

    에코의 당부를 고려하여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주인공 시모니니는 세상 모든 것에 '전방위적 적개심'을 가진 인물. 숱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는 이 지적인 추리 소설에서 유일하게 허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시모니니에게 남은 건 편견뿐. 유대인, 예수회, 프리메이슨, 그리고 여자마저 증오한다. 사랑하는 것은 오직 맛있는 음식뿐.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일기를 완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이제 시모니니가 얼마나 추악한 인물인지를 하루치 분량씩 드러낸다. 어린 시절 공증인 사무실을 다니며 문서위조의 달인에 등극한 시모니니는 드레퓌스 대위 사건 등 19세기 유럽의 주요 정치적 사건에 빠짐없이 개입하면서, 음모론이 어떻게 세를 불려가는지를 자신의 위조문서로 입증한다.

    더 많은 충격적 위조와 날조가 소설 마지막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독자는 이 장르소설의 표면에서는 시모니니의 정체와 사건의 반전을 추리하며 지적 자극을 누릴 수 있고, 수면 아래에서는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속임수와 기만이 판치고 있는지를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핵심 주제에 덧붙여 추가로 얻게 된 교훈 하나. '프라하의 묘지' 111쪽을 보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시모니니가 난생처음으로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대목이 있다. 무거운 바구니를 옮겨주겠다고 어렵게 호의를 보였던 소년 시모니니에게 귀여운 소녀는 매몰차게 말한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고독해진 소년은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고백했다. "하와의 딸들을 상대로 한 나의 전쟁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했다"

    언어학과 기호학에 관한 세계적 학자였지만 소설 쓰기는 계속 주저했던 에코의 마음을 돌린 것도 당시 출판사에 다니던 여자 친구였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에코의 이번 소설 문체를 빌리자면, "세상의 모든 소녀들이여. 아리따운 너희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은 또래 소년들을 그리 박정하게 뿌리치지는 말 진저. 너희들의 말 한마디가 세계 최고의 소설가도, 세계 최고의 악당도 만들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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