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무조건 '하루키'

    입력 : 2013.04.05 03:04 | 수정 : 2013.04.05 13:58

    지난 2월 일본 신문에 "무라카미 하루키: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설이 4월에 나오다"라는 한 줄 광고가 떴다. 하루키의 3년 만의 신작. 곧바로 10여개 이상의 한국 출판사가 판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요즘 출판계 단골 화제는 "어느 출판사가 얼마에 하루키 판권을 따낼까"이다.

    하루키<사진>는 출판계에선 일종의 잭팟(대박)이다. '1Q84'는 한국에서만 180만부가 팔렸고, 최근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아우라'까지 생겼다. '1Q84'의 경우, 한 국내 출판사가 1억엔(약 13억3000만원)의 선(先)인세를 제시하고도 번역 판권을 갖지 못했다. 이번엔 그보다 더 높아질 거란 예측이다.

    문제는 누구도 '그 책'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점. 일본 출판사 분게이슌주(文藝春秋)는 2월 16일 "하루키 신작 출간이 임박했다"며 "내용은 일급비밀"이라고 했다. 3월 15일 공지는 이렇다. "제목은 '색채가 없는 다사키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일본 서점 발매일은 4월 12일". 결국 내용도 성격도 모른 채 하루키란 이름에 국내출판사가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한국은 '봉'이다. 국내 출판사들끼리의 과당경쟁 때문이다. 1990년대 최고 2만달러 수준이던 번역 선인세는 2000년대엔 10만~20만달러로, 최근엔 이보다 더 올랐다. 2~3년 전부터는 인문서까지 '선인세 경쟁'에 합류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기계발서·경제경영서가 덜 팔리고, 인문서 시장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5년 전엔 1만달러를 넘지 않았던 인문서 선인세가 요즘은 평균 1만~2만달러 수준. 지난해 말엔 슬라보예 지젝의 신간 선인세가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베스트셀러를 낸 해외 석학 책일 경우, 30만~50만달러까지 치솟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형출판사 A의 관계자는 "원고도 안 보고 저자의 이름과 출간 기획서만 보고 '지르는' 출판사들이 문제"라고 했다. 선인세 50만달러면 50만부의 인세를 미리 주는 셈이다. 무리한 마케팅, 책값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출판인들은 "불황일수록 팔리는 책만 더 팔린다"며 덩치 경쟁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저자가 유명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얄팍한 소비자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출판이 한 사회의 지적·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데 동의한다면, 지금의 행태는 출판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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