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좋다는 노인과 오역하는 통역사는 서로 닮은꼴

    입력 : 2013.04.06 03:03

    언어감각 기르기|요네하라 마리 지음|김옥희 옮김|마음산책|324쪽|1만5000원

    일본의 러시아어 동시통역사 요네하라 마리(1950~2006)는 생전에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통찰과 빛나는 유머를 곁들인 책들을 쓴 저술가로도 사랑받았다. 난소암으로 타계한 그해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후 국내에도 많은 팬이 생겨났다. 이 책까지 합쳐 지난 7년간 15권이 번역됐다. 이번 책은 동시통역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들었는데 이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언어의 프리즘에 통과시켜 답을 찾는 인문서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는 무겁지만 대담(對談) 형식이어서인지 내용은 경쾌하다. 요네하라는 이 책에서 일본 각계 명사 11명과 통역·문학·과학·교육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요네하라는 번역과 통역의 차이를 설명할 때 "번역은 쓰는 것이고, 통역은 말하는 것"이란 식의 기능적 차이에 대한 설명을 배제한다. 그보다는 인간이 눈과 귀를 사용해 정보를 다루는 방식을 들려준다. 번역가는 눈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통역사는 귀로 듣는다. 눈은 욕심쟁이여서 본 것을 모두 파악하려 들고 파악한 것을 모두 번역하려 든다. 반면 귀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듣지 못하며 듣더라도 소음으로 흘려버린다. 통역사가 이해한 정보만이 의식 속에 살아남아 입을 통해 다른 언어로 나온다. 모든 단어를 1대1로 통역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십상인데, 이는 인간의 눈과 귀가 사물을 인식하는 근본적인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대담자의 재치도 이 책의 읽는 재미를 더한다. 요네하라는 의학박사인 다다 도미오와 대담에서 인간의 말장난을 화제 삼는다. "자동번역기 개발자에게 말장난 번역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불가능하답니다."(요네하라) "불가능하죠. 컴퓨터가 농담을 한다면 그건 '에러'가 되니까요."(다다)

    오역(誤譯)과 거짓말의 닮은 점에 대한 설명도 듣고 나면 결국 사람 분석이다. 노인들이 "내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때, 그들의 뇌가 기억하는 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추억을 되씹는 과정에서 지어낸 거짓말이다. 이는 마치 통역사가 잘못 알아들은 것을 다른 말로 옮길 때 오역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요네하라에 따르면, 모국어와 비슷한 외국어는 빨리 배울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배우기는 어렵다. 요네하라는 그 이유가 "억양과 패턴이 닮은 탓에 적당히 때우려는 뇌의 작용 때문"이라며 "모든 걸 새로 익혀야 완벽하게 익힐 수 있다"고 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요네하라가 던지는 센스 있는 경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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