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美 작가가 우리 대신 파헤친 '그곳'

    입력 : 2013.04.19 23:27

    김태훈·Books팀장
    김태훈·Books팀장
    이번 주 발표된 퓰리처상 소설 부문 수상작인 장편 '고아원 원장의 아들'(The Orphan Master's Son)은 인간을 체제의 부속품으로 보는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서 과연 서구적 의미의 '개인'이 나타날 수 있는가를 탐색한 작품입니다.

    소설은 함경북도 청진의 한 고아원에서 자라난 박준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고아원이 식량난으로 문을 닫은 뒤 준도는 인민군에 차출됩니다. 이후 준도의 삶은 국가에서 정한 대로 흘러갑니다. 일본인을 납치하고 스파이로 활동하던 그는 단 한 번 임무수행 실패로 수용소에 갇힙니다. 김정일은 그런 준도를 이용해 수용소에 있는 자신의 라이벌 '가 사령관'을 제거합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의도하지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준도가 사령관의 부인 '순문'을 사랑하게 된 겁니다. 이 사랑을 통해 준도는 비로소 국가의 명령이 아닌 자기 안의 욕망을 보게 됩니다.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을 갖게 된 거죠.

    생각해보면 북한은 작품으로 다루기에 정말 좋은 소재입니다. 북한은 국가가 부여한 개인의 정체성과 그 개인의 사생활 사이의 간극이 극도로 벌어진 나라입니다. 준도가 아니어도 국가의 요구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즐비할 겁니다. 그러나 체제 홍보 일꾼인 북한 작가들은 결코 그 혼란과 고통을 증언할 수 없습니다. 널린 게 소재인데 그걸 쓰지 못하니 속으로 안타까워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작가 애덤 존슨은 '고아원…'을 쓰기 위해 탈북자들을 면담했고, 2007년에는 한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얘기를 바깥세상에 들려줘야 할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 사명감을 우리 작가들이 나눠 가지려 하지 않는 까닭은 뭘까 궁금해집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