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찍어내야 산다"

  • 최성환·경제학 박사

    입력 : 2013.04.20 03:13

    [노벨경제학자 크루그먼의 단언]

    美 경제 상황, 대공황 때만큼 심각, 달러 '폭발적'으로 풀어야 해결돼… 인플레이션? 일자리가 더 급하다"

    그건 진통제에 불과" 우려 시각도

    책 -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폴 크루그먼 지음|박세연 옮김|엘도라도|328쪽 |1만6000원

    책 제목부터 크루그먼답다. "지금 당장 불황을 끝내라"는 명령은 돈을 왕창 풀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 반색할 일이다. 필요하다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가 아닌가. 반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들으면 "알 만한 사람이 허튼소리를 계속하고 있다"며 빈정거릴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역설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게 거꾸로다. 미덕은 악덕이고, 신중함은 어리석음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비를 줄이고 빚부터 갚으라는 처방은 지금의 병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여기서 크루그먼이 말하는 '역설의 세상'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딴 세상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세상이 뒤바뀌었는지, 왜 거꾸로 되었는지는 이제 그만 물으라"는 게 크루그먼의 주문이다. 원인이나 배경이 무엇이든 당장 절실한 건 상황을 인식하고 처방을 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모든 게 뒤바뀐 세상, 거꾸로인 세상에서는 전통적이거나 교과서적 해법이 아니라 전혀 다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진단이 필요하다. 크루그먼은 "미국 경제는 대공황 때와 매우 흡사한 대침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업률이 그 당시처럼 20%를 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업자 수가 2007년 680만명에서 2011년 12월 1300만명으로 배 가까이나 늘었다. 인간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요소가 바로 고용이다. 비자발적 실직이 길어지면 유능한 사람도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장기 실업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에 입은 상처가 깊은 것이다. 크루그먼은 책 맨 앞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실업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크루그먼의 결론은 '일자리 가뭄'이 재정 적자보다 훨씬 큰 문제라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이 15조달러를 넘는 미국 경제가 '겨우' 1조달러 정도의 적자를 겁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5년을 넘어선 불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달러를 '폭발적'으로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돈이 넘쳐나는데 돈을 더 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현재의 불황은 침체 정도가 너무 심각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노벨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블룸버그뉴스
    그럼 요즘 같은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전통적·교과서적 긴축 처방은 힘을 잃고 만 것인가? 크루그먼이 긴축 신봉자들이라고 비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알베르토 알레시나(하버드대), 라구람 라잔(시카고대) 등은 잘못된 처방으로 비판받아 마땅한가? 1997년 말 외환 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 처방을 받아 살아난 우리나라가 별종인가?

    이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일본에서 찾아보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크루그먼의 충실한 제자인 셈이다. 크루그먼이 처방한 대로 돈을 많이 풀고 그에 따라 엔화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주가가 급등하고 주요 기업의 수출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근본적으로 회복되려면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 새 성장 동력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풀린 돈이 단기적 진통제 노릇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 처방은 아니라는 것이다.

    달러 역시 더 찍어내면 사회적 통증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가장 안전한 통화로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는 기축통화이자 단일 수출품목으로 미국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달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나라 경제의 경쟁력은 돈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에 달려 있고 그 바탕 위에서 전통적·교과서적 긴축 처방전을 찾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폴 크루그먼은…

    1953년생. 예일대를 나와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두 모교의 교수를 지냈다. 1991년 소장 경제학자의 영예인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고 2008년 국제무역과 경제지리학을 통합한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이며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 ‘불황의 경제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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