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비엔나 카페촌… 클림트·프로이트·쇤베르크가 앉아 있었다

    입력 : 2013.05.04 03:01

    비엔나 1900년 표지 이미지
    비엔나 1900년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태터 지음
    박수철 옮김 | 예경 | 464쪽 | 4만5000원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비엔나 문학' 하면 날마다 모두가 카페의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트리아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1920년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 1900년, 비엔나에는 약 600개의 카페가 있었다. 그 시절 비엔나의 카페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여러 문학사조가 피어올랐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탄생하고 소멸했다. 정치와 과학이 논의됐고, 새로운 양식의 회화·음악·건축이 태동했다.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에는 비엔나 데카당(퇴폐파) 시인들이 모여들었다. 시오니즘의 창시자 테오도르 헤르츨과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카페 '란트만 암 링'의 단골이었다. 레온 트로츠키를 위시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토요일마다 카페 '첸트랄'에 모여 서로를 '헤어 독토르'(Herr Doktor·박사님)라고 공손히 부르며 토론을 즐겼다.

    어떤 도시는 그 이름 자체로 한 시대의 상징이 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비엔나는 "다가올 시대의 세계를 뒤흔들 말과 생각이 쏟아진", 진정한 새 시대가 시작된 곳이었다. 저자는 비엔나의 문화와 예술을 다룬 책으로 널리 알려진 출판인. 이 놀라운 도시를 수놓았던 예술가와 지성인들의 이야기를 '예술과 디자인' '건축' '문명과 사회'의 3부로 나눠 그림, 포스터, 사진 700여점과 함께 담았다. 그 시대 인물들의 일상 사진, 지면에서 뛰쳐나올 듯 눈부신 그림들만으로도 책장을 넘기는 일이 즐거워진다.

    비엔나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비엔나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예경출판사 제공
    책에 등장하는 1900년 전후 비엔나의 예술가와 지성인을 꼽자면 한이 없다. "귀족적 성격이 짙은 비엔나 문화의 가장 눈에 띄는 산물이었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표현주의 시인들처럼 힘찬 내면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23쪽)가 그때 비엔나에 살았다. 오스트리아풍(風)이라 불리는 장식적 건축 양식의 창시자인 건축가 바그너, 작곡자이자 화가로 활동한 전형적 팔방미인 쇤베르크도 거기에 있었다. 히틀러 역시 비엔나의 황금기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이 경이로운 도시의 예술적·지적·역사적 풍경을 한꺼번에 모으려다 보니, 책은 '이야기'를 담았다기보다 일종의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준다. 낯선 용어와 인명에 친절한 각주를 달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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