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다빈치·몽테뉴·갈릴레오… 그들에게 靈感을 준 책이 있었으니

    입력 : 2013.05.18 03:00

    1417년, 근대의 탄생
    1417년, 근대의 탄생|스티븐 그린블랫 지음|이혜원 옮김|까치|400쪽|2만원

    때는 1417년. 교황은 지위·이름·권력을 다 잃은 채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 교황의 비서였던 브라촐리니는 10세기 이전 또는 더 옛 기록을 찾아나선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필사본이 더 오래된 필사본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베낀 것이기를 바랐다. 책 사냥꾼의 심장은 그럴 때 고동친다.

    수도원은 필사본의 보물창고였다. 수도사들에게 '기도와 같은 독서'는 육체노동과 마찬가지로 엄숙한 의무였다. 6세기 유럽의 뛰어난 필사가는 폭력으로 죽을 경우 수도원장급 '속죄 배당금'을 받을 만큼 대접이 후했다. 1417년 독일 남부의 풀다 수도원에서 1000년 이상 잊혔던 라틴어 장편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찾아낸 브라촐리니는 필사를 지시한다. 세계를 진동시킬 책이 수도원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기원전 50년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쓴 루크레티우스는 오비디우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등을 매료한 시인이자 철학자. 에피쿠로스 철학의 추종자였다. "물질에는 상하가 없으며 창조자도, 사후 세계도 없다. 신을 화나게 할 수 있다든가 달랠 수 있다는 허튼 생각은 하지 마라. 신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야말로 미신(迷信)이다." 루크레티우스는 "두려운 죽음에 맞서 높은 벽을 쌓으려 하지 말고 쾌락이라는 밭을 일구라"고 가르쳤다. 쾌락이란 평정심, 마음의 평화이자 행복이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중세 사회에서 불온하기 짝이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보티첼리와 다빈치 등 르네상스 화가, 마키아벨리와 몽테뉴, 갈릴레오 등 철학자와 과학자에게도 흔적을 남겼다.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은 '책 사냥꾼(book hunter)'이었던 15세기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를 통해 종교를 벗어 던지고, 인문주의에 '귀의'하는 '근대'의 탄생을 엿본다. 양피지가 귀해 옛 글을 지운 자리에 필사한 이야기, 문장 아래로 그 글이 드러나는 대목에선 가슴이 뻐근해진다. 두껍지만 도전해볼 만한 '책 사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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