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人은 인류역사의 암적인 존재" 돌직구 날린 백인 천재

  • 김성곤·서울대 영문과 교수·한국문학번역원장

    입력 : 2013.07.06 03:10

    [불멸의 저자들] 수전 손택

    15세에 명문 버클리대학 입학한 영재
    공산주의를 파시즘이라고 비판했지만 북베트남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글 남겨
    경직된 지배문화에 반대한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 사진
    수전 손택은 머리카락 일부를 하얗게 물들인 독특한 헤어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수전 손택(Susan Sontag·1933~2004)은 미국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문화평론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여성이었다. 뉴욕에서 유대계 미국인 부모(잭 로젠블랫과 밀드레드 제이콥슨) 사이에서, 수전 로젠블랫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중국에서 모피 무역을 하다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어머니는 수전이 5세 때 미 육군 대위인 네이선 손택과 재혼했다.

    손택은 불과 15세에 명문 버클리대학에 입학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또 다른 명문인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당대의 석학이었던 케네스 버크와 리오 스트라우스로부터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배웠다. 이어 하버드대학원에 입학해 문학과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으며, 옥스퍼드대와 파리대 유학을 다녀온 후 저명한 교수 및 저술가로 문명을 날렸다. 17세 때 시카고대 강사인 필립 리프와 결혼하지만 8년 뒤 이혼했다.

    1964년 손택은 '파티잔 리뷰'에 '캠프에 대한 단상'이라는 혁신적인 글을 발표해서 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58개의 단상으로 이루어진 이 글에서 손택은 자신이 말하는 캠프는 진지하고 순수한 것을 해체하고, 유희적이고 비순수한 것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우리는 경박한 것에 대해서도 진지할 수 있고, 진지한 것에 대해서도 경박할 수 있다." 손택의 이 '비순수의 선언'은 후에 "예술도 상품이 될 수 있고, 상품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명제로 발전한다. 1960년대 자유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또 다른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와 함께 난해한 모더니즘 소설의 죽음을 선언한 손택은 캠프 이론을 통해 순수문학과 귀족 예술에 반기를 들었던 저항의 지식인이었다.

    1966년 손택은 '캠프에 대한 단상'이 포함된, '해석에 반대하며(Against Interpretation)'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출간해 또 한 번 세계 지성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 손택은 현대의 해석 만능주의가 지성을 너무 강조하다가 예술의 초월적인 속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손택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석학이 아니라, 예술의 에로틱스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손택은 이 책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경직된 전통적 해석에 반기를 들며, 문학과 예술만이 갖고 있는 영혼과 유연성과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손택은 교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와 경직된 프로이트주의를 "공격적이고 무례한 사조"라고 비판한다. 특히 마오쩌둥의 중국과 스탈린의 소련, 그리고 동유럽의 공산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파시즘"이라고 비난한다. "공산주의는 파시즘이다. 그러나 우리가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실패했기 때문에 전복이 가능한 폭정의 한 형태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파시즘이다." 다만 그녀는 북베트남의 경우는 다르다고 봤다. 배우 제인 폰다가 그랬던 것처럼 하노이에 다녀온 다음, 북베트남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글을 썼다. 물론 그녀의 그런 행동은 워싱턴의 대외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저항의 제스처였다.

    손택은 직설적인 화법과 돌출행동으로 반대자들로부터 자주 비판을 받는다. 예컨대, 그녀는 1967년에 '파티잔 리뷰'에 "백인은 인류 역사의 암적인 존재"라고 썼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그런데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다. 내가 암환자를 모독하는 말을 한 것 같다"라고 한술 더 떠서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고 비판자들은 할 말을 잃게 만들어버렸다. 9·11 직후에는 "이것은 문명이나 자유나 휴머니티나 자유세계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 세계의 수퍼 파워라고 주장하는 나라의 독특한 동맹관계와 행동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말해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공분을 샀다.

    '해석에 반대하며'에서 손택은 경직된 이념에서 벗어난 예술과 문화의 유연성을 보여주면서, 지배문화에 저항하라고 역설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 펜클럽회장을 맡았을 때는 이란의 호메이니가 살해명령을 내린 샐먼 루슈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이란의 경직된 이슬람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손택은 예리한 문화적 통찰을 통해 작가들과 지식인들에게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조감하며, 다가올 미래를 예시해주었던 보기 드문 문화평론가였다. '해석에 반대하며'의 표지에는 저자의 강인한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실렸고, 이후 "미국 문단의 다크 레이디(Dark Lady)"로 불렸다.

    손택은 2004년 백혈병으로 타계했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저항과 자유주의 정신은 살아남아 우리에게 체제에 순응하거나 세태에 휩쓸리지 말고, 경직된 지배문화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살아야 한다고 웅변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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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전 손택, 그녀가 던진 질문]

    사진으로 경험한 타인의 고통
    당신은 과연 이해하고 있을까

    1977년에 출간한 '사진에 대해서(On Photography)'에서 손택은 흥미 있는 지적을 한다. 그녀는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독일인처럼 끊임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행 중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그들이 쉬는 동안에도 일 대신 무엇인가를 계속 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손택은 또 사진이 역사와 머나먼 곳을 경험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이미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전쟁 사진에서 사람들은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사진의 한 장면만을 기억하게 되며, 그런 사진들은 아직 준비도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끔찍한 경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1978년에 쓴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손택은 20세기의 대표적 질병인 암을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걸리는 것으로 보고 심리치료를 하는 것에 대해 예리하게 비판한다. 2004년에 쓴 유작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사진>'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전쟁 사진을 다루면서, 직접 참상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손택은 네 권의 소설을 썼고 네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우디 앨런의 영화 '젤리그'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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