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스위스, 돈만 된다면 범죄 앞에서도 중립?

    입력 : 2013.07.06 03:10

    "내 나라는 박멸 불가능한 공공의 적" 스위스 연방의원 출신 저자의 비난
    마약 거래 '검은돈'을 은행이 세탁하면 정부 관계자가 나서서 감싸주는 나라
    주요 고객엔 세계적인 독재자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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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홍기빈 해제
    갈라파고스|264쪽|1만2800원


    지구 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세(租稅) 천국, 스위스의 민낯이 드러난다. 조세 피난처를 통한 탈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나라 밖으로 돌아다니는 자금 중 3분의 1 이상이 비밀주의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에서 관리되고 있다. 어떤 돈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호해주는 곳이 바로 스위스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마약 조직원이 가져오는 돈 가방을 외면하지 않는다. 개인 정보를 묻지 않고 얌전하게 세탁해줄 뿐이다. 또 마약 관련 자금 세탁은 스위스에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1200여명의 제네바 변호사 상당수는 이혼소송 같은 분쟁 변론은 해본 일이 없다. 고객이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그들의 주된 업무이다. 스위스는 그야말로 검은돈의 원스톱 서비스 천국.

    스위스에서 태어난 저자는 아름다운 풍광과 철저한 위생을 상징하는 겉모습과 달리 원조 탈세 천국으로 악명 높은 자신의 조국 스위스를 박멸이 불가능한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 헬베티아(라틴어로 스위스)의 부(富)의 원천은 바로 '남의 돈'이며, 그 돈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마약과 범죄로 벌어들인 '검은돈'이며 둘째는 제3세계 지도자들이 불법적으로 빼돌린 '회색 돈'이다. 합법적 거래를 통한 '깨끗한 돈'은 셋째로 분류했다.

    저자는 1980년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스위스 은행들이 세상의 추악한 돈을 세탁해주고, 정부 관계자들이 이를 비호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스위스로 검은돈이 몰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세탁기 안에서 미국 달러가‘세탁’되고 있다. 스위스는 아름다운 풍광과 달리 탈세 천국으로 악명이 높다
    세탁기 안에서 미국 달러가‘세탁’되고 있다. 스위스는 아름다운 풍광과 달리 탈세 천국으로 악명이 높다. /토픽이미지
    1983년 이탈리아 사법당국이 국제 마약 밀거래 자금을 세탁해 온 레바논인을 붙잡아, 그가 활동해 온 스위스 빌의 사법당국에 넘겼지만 그는 곧바로 무죄 방면된다. 이 자금 세탁 혐의자는 빌 출신 금융인으로부터 은밀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고, 그가 경영하던 베른 지역 페이퍼컴퍼니는 이 금융인이 관리해왔다. 금융인의 아들은 스위스 베른주 수사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1988년 당시 스위스 법무장관은 지방의 한 검사가 돈세탁에 연관된 회사의 경영진을 추적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 회사는 자신의 남편이 부회장으로 일하는 곳이었다. 장관은 집무실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날로 남편은 회사를 떠났다. 이 사건의 혐의 사실은 지금까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987년 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발한 스위스항공 여객기는 목적지인 제네바 쿠앵트랭 공항에 착륙했지만 화물칸 문이 열리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스위스항공사는 탑승객 이름과 주소를 기록한 뒤 짐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승객 중엔 77세의 리우데자네이루 교구 소속 신부가 있었다. 몇 시간 뒤 이 신부에게 가방을 전해준 사람은 항공사 직원이 아닌 2명의 형사였고, 신부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3개 가방 안에는 100만달러 상당의 마약이 들어 있었다.

    스위스 은행들이 주요 고객이었던 독재자들의 편의를 도왔던 모습도 소개하고 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이멜다, 아이티의 뒤발리에, 자이르(현 콩고공화국)의 모부투 등이 그들이다.

    교수 출신으로 스위스 연방의회 의원(사회민주당)이던 저자는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 책을 처음 출판한 뒤 의원 면책특권을 박탈당했다. 이어 스위스 언론으로부터 '조국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모욕을 당하고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줄소송에 시달렸다. 저자는 굽히지 않았다. 국경을 넘나드는 탈세 행각을 돕는 검은돈의 원천을 뿌리뽑아야 한다며, 이를 위한 시민의식의 봉기를 촉구했다. 그래야 스위스 비밀 은행이라는 치명적인 제도를 대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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