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야구소설 주인공 '루저'가 많은 이유

    입력 : 2013.07.26 23:09

    김태훈 Books팀장
    김태훈 Books팀장
    프로야구 팬인 정홍원 국무총리가 응원 팀을 넥센 히어로즈에서 한화 이글스로 바꿨다는 뉴스 기억하십니까. 세종시 주민이 되면서 충청도 연고 팀을 택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이야 이사를 어디로 가든 고향 팀 응원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정 총리의 고향은 경남인데, 아무래도 총리는 응원 팀 선택에도 우리와 다른 '고려'를 하게 되나 봅니다. 그런데 좀 아쉽습니다. "꼴찌 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뜻도 있다"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메시지도 담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야구뿐 아니라 책도 좋아한다는 정 총리에게 2000년 이후 출간된 야구 소설 몇 권 소개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2000년대 야구 소설사(史)는 아름다운 성공담으로 시작해 루저(loser) 이야기로 끝납니다.

    박현욱의 장편 '새는'(2003)은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고등학생이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지만, 이 여학생이 "대학 가서 만나자"고 하자 이 악물고 공부해 명문대에 합격하는 얘기입니다. 최동원 투수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1980년대 전반, 지방 도시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최동원의 비상과 학생의 도약이 투 트랙으로 전개되는 성장소설이죠. 야구 소설로는 거의 유일한 해피엔딩입니다.

    이후 야구에서 멋진 성공담은 찾기 힘듭니다. 같은 해 8월 출간된 박민규의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프로야구 사상 최소 승률을 기록한 뒤 사라져간 삼미와, 어린 시절 삼미 팬클럽 회원이었던 '나'가 IMF 구조조정을 당해 실직하고 이혼당하는 내용입니다. 박상의 소설집 '이원식씨의 타격폼'(2009)은 삼진아웃을 잡겠다며 윽박지르듯 공을 뿌리는 투수에게 기괴한 타격 폼으로 맞서는 타자를 등장시켜 경쟁 사회를 야유합니다. 주원규 장편 '천하무적불량야구단'(2010)에선 돈에 매수돼 져주기 게임이나 하는 1군 대신 야구 낙오자들로 팀을 다시 꾸려 우승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우승 과정이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이길 때마다 온갖 우연과 행운이 겹칩니다. 작가가 게으르고 편한 결말을 얻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우연에 기대지 않고선 사회적 약자들이 사람 구실 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역설적 비판입니다.

    야구 소설이 신나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우리 위정자들이 더 고민하는 모습 보고 싶습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선 류현진 선수가 몸으로 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 동쪽 끝 작은 나라의 꼴찌 팀 한화 출신 투수가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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