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모르는 마르크스(사회주의 이론가) vs 배려 없는 케인스(시장주의 이론가)

    입력 : 2013.08.03 02:56

    디킨스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알고보니 사회경제학 이론 담아
    경제학자가 사회·사람 보는 시각차… 결국 당대 이끈 경제학 이론 낳아

    '사람을 위한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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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위한 경제학|실비아 나사르 지음|김정아 옮김|반비|816쪽|3만원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1843)이 망치처럼 독자를 후려쳤다"는 대목부터 눈에 들어온다.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심한다는 이 이야기는 사실 맬서스 '인구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19세기 초까지도 경제학은 "인류의 9할이 비참한 가난과 혹독한 노동 속에 살아갈 운명"이라는 '인구론'의 암울한 전망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디킨스는 더 희망적이고 덜 숙명적인 관점을 담은 소설이 정치경제학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환경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물질적 조건에 개입할 수 있다는 믿음, '인간적인 경제학'이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세상과 불화하는 과학자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원작자 실비아 나사르는 이제 경제학 속으로 독자를 잡아끈다. 차가운 숫자와 도표가 난무하는 강의실이 아니다. "경제학자도 그가 몸담은 사회와 당대의 편견에 깊이 연루돼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1850년부터 1950년까지 경제학 천재들의 시대를 내시경처럼 들여다본다. 사람과 사회, 경제 논쟁을 아우르는 '그랜드 투어'다.

    ◇마르크스 vs 마셜

    카를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아버지에 반항하는 탕아에 충동적이었지만 진지하고 박식했다. 그는 산업혁명으로 부(富)가 급증한 영국에서 '충격적인 빈부의 공존'을 봤다. 가난이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런던이라는 세계의 수도에서 빈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현상, 불필요하고 잘못된 귀결로 보였다. "부르주아는 더 이상 사회 지배 계급이 될 자격이 없다.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족쇄밖에 없고, 얻을 것은 온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공산당 선언')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집필 중이던 1850~60년대에 평균 임금이나 생활수준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2~3㎞ 떨어진 곳에 살았던 존 스튜어트 밀, 찰스 다윈 등 동시대인과 교류하지 않았고 공장에 직접 가본 적도 없다는 게 마르크스 이론의 맹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현대사회의 운동법칙을 폭로하겠다면서 책상머리에만 머물렀던 것이다.

    영국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앨프리드 마셜은 그 지점에서 마르크스와 달랐다. '풍요 속 빈곤'을 연구한 이 경제학자는 세상과 두루 접촉했다. 그는 가난의 가장 큰 원인이 저임금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저임금의 원인에 대해 급진주의자들은 고용주의 탐욕, 멜서스주의자들은 빈곤층의 도덕적 해이를 내세웠지만, 마셜은 '낮은 생산성'이라고 생각했다.

    마셜은 저임금에 대한 처방으로 '더 나은 교육을 통한 생산성 증대'를 제시했다. 마셜이 묘사하는 공장 장면은 마르크스보다 구체적이고 섬세하고 다양하다. 마셜이 마주친 문제적 현상(조립 라인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효과)은 디킨스며 마르크스의 것과 같았지만 해법은 달랐다. 그가 1890년 펴낸 '경제학 원리'는 사유재산 및 경쟁을 환영하면서 인간 환경의 개선을 낙관하고 있다.

    ◇세계전쟁과 공황

    오스트리아의 작은 공장 마을에서 태어난 조지프 슘페터는 명민한 출세주의자였다. 영국 유학 시절엔 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했던 대영박물관 독서실에 앉아 독창적인 사상을 내놓겠다는 집념을 다졌다. 그가 꿰뚫어본 자본주의의 특징은 끊임없는 혁신, 즉 '창조적 파괴'였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를 기생충이라 일축했지만 슘페터는 "영웅적 개인, 새로운 해변을 찾아나선 리더 덕에 경제성장이 온다"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 후 사회당이 집권하자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이 된 그는 철저하게 고립된 상태로 경제 자활을 추진했지만 7개월 만에 조롱 속에 해임됐다.

    카를 마르크스, 앨프리드 마셜, 어빙 피셔, 조지프 슘페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영국 재무부 공무원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인도 루피화 업무를 맡으면서 "통화(通貨)는 맥박과 같고, 온갖 것을 보여주는 생체 징후"라는 통찰을 배웠다. 해와 달이 밀물과 썰물을 만들듯 통화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 감각은 종전 후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솜씨를 발휘한다. 케인스는 1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화가 드가 등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내놓은 미술품을 헐값에 사들일 만큼 냉정한 시장주의자였다.

    ◇입장이 다른 상대를 지지하다

    이 책은 경제학이 어떻게 인간 운명에 개입해 굶주린 인류를 구원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1870년 전후로 경제학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느냐'에 대한 학문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학문으로 바뀌었다"면서 "그 경제 진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썼다.

    정밀 묘사로 경제학자와 그 시대가 생생하고 윤기 있게 다가온다. 어빙 피셔와 케인스, 슘페터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어떤 입장을 견지했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피셔는 번영을 위해서는 자유시장이 필수불가결하며 그 기능은 정부(중앙은행)의 행동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도 총론은 비슷했지만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사회주의에 반대한 슘페터와 하이에크는 정부 통제가 없는 완전한 자유시장을 신봉했다. 하이에크를 왕립아카데미의 일원으로 추천한 것이 케인스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오늘의 질문과도 겹쳐진다. 철학자 탁석산은 최근 펴낸 '행복 스트레스'에서 "행복이라는 개념은 역사가 200년밖에 안 된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경제학도 인간의 구조적 불행을 풀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에서 탄생했다. 철학과 경제, 삶은 이렇게 뼈와 살처럼 엉겨붙어 있다. 최근의 경제학에 대한 설명이 박한 게 흠이지만 체온이 느껴지는 경제 교양서는 오랜만이다. 원제 'Grand Pursuit: The Story of Economic G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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