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저자들] "전공투, 자네들은 나치보다 나쁘다네" 일갈한 日 지식인

  • 김석근 아산정책연구원 인문연구센터장 겸 아산서원 부원장

    입력 : 2013.08.03 02:56

    [마루야마 마사오]
    日 파시즘·군국주의 분석한 戰後 사상가

    10살 때 관동大地震 조선인 수난 기록, 군대 소집됐을 땐 원폭 투하 참상 목격… '전체'란 이름의 폭력을 날카롭게 비판

    마루야마 마사오.
    /조선일보 DB
    히로히토(裕仁·1901~1989) 일본 덴노(天皇·일왕)와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는 20세기 일본을 상징하던 두 덴노였다. 전후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사상가 마루야마는 '학계의 덴노' '마루야마 덴노'로 불렸다. 그가 타계했을 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나는 마루야마 마사오 선생이 일본의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인들에게 공통 언어를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한다"는 논평을 냈다. NHK도 '마루야마 마사오와 전후 일본'이란 주제 아래 그의 사상을 조명하는 특집 방송을 2회 편성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과 더불어 한 시대가 가고 있다고 봤다. 그의 죽음 이후 '마루야마 정치학'과 '마루야마 사상사학'은 역사 또는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과거'가 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 전망은 빗나갔다. 보수·우경화하는 지금의 일본 사회를 보면서 그를 다시 '호출'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날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그의 분석과 비판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루야마는 정치부 기자로 명성을 날린 마루야마 간지(丸山幹治·1880~1955)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그 친구들이 시대를 이끌어간 진취적 지식인이었던 탓이었을까. 그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일찍부터 눈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조숙하고 생각이 깊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마루야마 가족과도 가깝게 지내던 자유주의 성향의 작가 하세가와 뇨제칸(長谷川如是閑)의 강연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고등경찰에 연행돼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훗날 이 사건을 두고 "근대국가의 폭력성을 여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뒤 마루야마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 대상에 올랐다. 제국대학 교수가 된 후에야 이 목록에서 해제됐다. 다수 또는 전체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가졌던 그의 내면은 관동대지진(1923) 때도 당시 재일 조선인들이 당한 끔찍한 일을 기록해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26세이던 1940년, 그는 도쿄제국대학 정치학과의 일본 정치사상사 담당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던 시대였다. 결혼 석 달 뒤인 1944년 8월 그에게 군 소집 영장이 날아들었다. 신병 훈련소는 식민지 조선에 있는 평양이었다. 하지만 '나이 든 서생'에게 군사훈련은 무리였는지 얼마 후 각기병으로 귀가 조치됐다. 이듬해 3월 재소집된 그는 이등병으로 히로시마 육군선박사령부에 배속됐다. 그는 이곳에서 원자폭탄 투하를 경험했다. 원폭 투하 지점과 그의 부대는 약 5㎞ 떨어져 있었다.

    일본 패망과 함께 그는 대학으로 복귀했다. 원폭 투하 이후 참상을 목격하는 등 군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46년 '세계' 5월호에 발표한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라는 글에서 그는 파시즘과 군국주의 체제의 메커니즘, 그리고 그 속으로 저항 없이 빨려들어 버린 일본인의 심리 상태를 분석했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 양심을 가진 '주체'라는 시각에서 그 반대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 일본'을 비판했다. 이후 그는 군국주의 파시즘 일본과 우익 운동에 대한 정신사적 분석을 시도하는 한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안보 투쟁 등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했다.

    마루야마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1960년대 후반 그가 과격한 학생운동을 벌인 전공투(全共鬪·全學共鬪會議)와 겪은 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전공투 학생들은 그를 "기만에 찬 전후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그들에게 감금당하고 심한 폭언까지 들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보다는 폭력 시위라는 '수단과 방법'이 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전공투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성을 목격한 마루야마는 이들을 향해 "자네들은 나치즘보다 더 나쁘다!"고 일갈했다. 이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결국 정년이 3년 남아 있었지만 1971년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마루야마는 평생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돌아보지 않는 민주주의를 일종의 허상이라 여겼고 다수의 전제와 횡포, 민중주의와 포퓰리즘(populism)에 대해 우려했다. 양심의 자유와 인격적 주체 확립이라는 그의 명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한 그의 글, 21세기 일본의 우경화에도 통해]

    마루야마 마사오를 읽어야 할 이유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구매하기
    생전에 쓴 글들은 ‘전집’(16권, 별권 1)에 수록돼 있다. 사후에 ‘강의록’(7권), ‘좌담’(9권), ‘서간집’(5권), ‘회고담’(2권) 등이 간행됐다. 대표작으로는 역시 여러 언어로 번역된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한길사·사진)과 ‘일본정치사상사연구’(통나무)를 꼽아야 할 것이다. ‘충성과 반역: 전환기 일본의 정신사적 위상’(나남),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도 권하고 싶다.

    마루야마를 다룬 책들?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많다. 예찬에서 비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효율적으로 골라서 읽을 필요가 있다. 최근에 번역된 ‘마루야마 마사오: 주체적 작위·파시즘·시민사회’는 그를 둘러싼 논쟁 구도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학자 여덟 명이 집필했다. 현재 일본의 정치 변동과 연결해 고바야시 마사야가 쓴 한국어판 서문 역시 읽어볼 만하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