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실패였던 DJ·부시 정상회담… 덕분에 해임됐죠"

    입력 : 2013.08.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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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과의 대화

    톰 플레이트 지음|이은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308쪽|1만8000원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직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구호기금을 부탁했다. 이 대통령은 "100만달러를 내놓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기 직전 반 총장이 슬쩍 얘기를 흘렸다. "일본은 500만달러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깜짝 놀랐고, 두 번째 통화에서 추가로 400만달러를 더 약속했다.

    반 총장은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금 아이티 구호기금으로 500만달러를 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서울에 전화를 했다. "일본이 구호기금을 1000만달러로 올렸는데, 어떡하실래요?" '일급 외교관 반기문'의 노련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책은 반 총장이 미 LA타임스 논설실장 출신인 톰 플레이트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2010~2012년 7차례의 대담과 6차례의 부부 동반 만남을 담았다. 반 총장은 "나에 관한 책이 15권 정도 나왔지만, 책을 전제로 한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력 중 가장 암울했던 시절 얘기도 털어놨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시 반기문 외교부 차관은 '천천히 진행하라'고 말렸지만, DJ는 뜻을 꺾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문제가 되었지요. (부시 대통령은) 아주 무례했어요. 그 때문에 김 대통령 이미지가 많이 손상됐습니다. 총체적인 외교 실패였어요." 그는 "김 대통령은 매우 불쾌해했고, 그래서 저를 해임하기로 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
    /이태경 기자
    겸손과 솔선수범이 모토인 그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취임 초부터 서구 언론은 그를 '무시'했고, 2011년 재선 성공 때도 미국 신문 대부분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반 총장은 "정말 충격이었다"며 "뉴스거리도 안 되는 거냐"고 속내를 보인다.

    대담 말미, 반 총장이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래리 서머스가 두 대통령을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클린턴이 10시 백악관 회의에 제때 나타난 비율은 30%, 오바마는 90%였다. 클린턴이 회의 주제에 관한 문헌을 읽었을 가능성은 아주 낮고, 오바마의 경우는 70%다.' 저는 회의를 주재하기 전 모든 자료를 100% 읽습니다. 시간을 지키는 비율은 97%. 저는 항상 규율이 잡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상반된 화법도 관전 포인트. 인터뷰어는 "이 직업이 당신을 미치게 하지 않는가" "미국인이라면 아마 이혼당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화살을 날리는데, 인터뷰이는 반듯한 '정답'만 쏟아낸다. 저자는 민감한 질문을 피해간다는 뜻에서 반 총장에게 '기름장어'란 별명이 붙었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에필로그는 이렇다. "우리에게는 유엔 꼭대기에서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일꾼이 있다. 왠지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는가?" 그러고는 덧붙인다. "우리는 카리스마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카리스마 없어도 반기문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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