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입력 : 2013.09.28 03:03

    소설·통계·논문 조합해 쓴 비평적 픽션… 아파트 때문에 겪는 세대별 고통 그려

    아파트 담보로 교육비 댔던 아버지 세대… 금융 위기 거치며 하우스푸어로 전락
    자식 세대는 비싼 집값에 방값 내기 급급

    '아파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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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게임ㅣ박해천 지음ㅣ휴머니스트ㅣ322쪽ㅣ1만8000원

    아파트 투자는 '따는 사람만 있고 잃는 사람은 없는 이상한 도박장'과 같았다. 하지만 진실은 "아파트는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일 뿐"이었다. 아버지들은 그 성장이 언젠가 멈추고 자식들은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지 못했다.

    소설가 최인호가 아파트와 인간 소외를 다룬 '타인의 방'을 발표한 지 40년이 흘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아파트는 끝없이 지어졌고, 이제 국민 10명 중 6명이 거기에 산다. 너나없이 뛰어든 아파트 게임의 결과는 참담하다. 이 책은 주택담보 대출로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집'이 아닌 '방'을 전전해야 하는 청춘 세대를 내시경처럼 들여다본다.

    아파트와 중산층의 성장 신화

    1940년대 태어난 4·19세대, 1950년대 출생한 유신세대, 1960년대 태어난 386세대는 중산층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아파트와 게임을 벌였다. 그들이 중산층에 진입한 길은 제각기 달랐다. 4·19세대는 대기업 취직이나 중동노동, 경제 호황으로 불어난 자금이 강남에 솟아오르던 아파트로 흘러가면서 중산층으로 도약했다. 유신세대는 개포·목동·상계 등 신시가지와 88서울올림픽을 발판으로, 386세대는 분당·평촌·일산 등 5개 신도시 덕에 각각 중산층이 됐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10년 동안 '바이 코리아'부터 '카드 대란'을 거쳐 '부동산 폭등'으로 이어진 투기적 과열 상태는 마침내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맞았다. 중산층 내부가 빠르게 분화해 두 '종족'이 새로 출현했는데, 바로 '하우스푸어'와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다. 전자는 바뀐 게임의 규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빚내서 마련한 아파트 때문에, 후자는 별다른 노후 준비 없이 아파트 한 채만 쥐고 버티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저자는 "폭등에 대한 기대감이 역병처럼 번졌다면 폭락에 대한 공포는 피할 수 없는 후유증 아닌가" 묻는다.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1955년생 K씨는 용인의 50평형대 아파트에 발목 잡힌 채 퇴직금으로 커피 전문점을 열었지만 장사는 신통치 않다. 뒤늦게 아파트 게임에 뛰어들었지만 젊은 시절의 포부나 시민의식보다는 자식 교육과 대출금 상환이 걱정이다. 그는 고시원에 살면서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P군을 보며 생각한다. 건물주들이 자신이나 고시원 사장 같은 자영업자를 중간책으로 내세워 갑과 을의 다단계 구조를 만들고 맨 밑에 P군 같은 청년을 밀어 넣고 있다고. 자식 세대의 미래를 볼모 삼아 생존하고 있다고.

    서울 강남 대치동의 아파트를 상공에서 찍은 사진.
    서울 강남 대치동의 아파트를 상공에서 찍은 사진. 미니어처 같기도 하고 핀볼 게임판 같기도 하다. /이득영 사진작가 제공
    한 아이가 다른 형태의 아버지, 여러 명의 아버지를 체험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로 나가는 여러 개의 창문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 성장한 변방 청년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창문은 별로 없었다. 돌파구는 새로운 아버지(몇몇 불온서적의 영웅)를 찾아 나서거나 스스로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962년생 '나'는 "내 식구만큼은 구김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려고" 부동산 투기 대열에 나선다.

    아파트 키드의 절망

    1968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제2차 베이비부머는 570만명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TV·프라모델·워크맨 같은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자란 이 '신세대'는 공적인 장소 한복판에서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이어폰만 꽂으면 몸 안에 '방'을 만들 줄 알았다.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에 등장한 청춘은 현실의 원본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본과 상관없이 스스로 증식하게 된 시뮬라크르(복제물)였다.

    하지만 그들이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는 사라지고 없다. 30대가 된 신세대는 저성장과 저금리, 아파트값 폭등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됐다. 그 아래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는 방 한 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다. 저자는 "중산층 부모는 노후 자금을 털어 무한 경쟁의 교육 시장에 뛰어들지만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집을 담보로 아들의 집을 짓는 꼴"이라며 "순환하는 착취의 고리 안에서는 지금의 중산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썼다.

    이 책은 '비평적 픽션'이다. 직접 경험한 것을 쓰지는 않았지만 박완서·구효서·박민규·김영하·김애란 등의 소설, 각종 통계와 논문을 바탕으로 상황을 설정해 사회상과 사람의 욕망을 읽어냈다. 비판적 시각은 전상인 서울대 교수가 쓴 '아파트에 미치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과 부분적으로 겹쳐진다. 책장이 바삐 넘어가지만 아쉽게도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서로 꼬리를 물고 착취하는 부모와 자식의 비극 앞에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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