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만 가면 과식하는 이유, 腦는 알고 있다

    입력 : 2013.10.19 03:03

    '뇌로 通하다'
    뇌로 通하다|김성일 외 지음|21세기북스 424쪽|2만원

    #1. 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직진하면 선로에서 작업 중인 인부 다섯 명이 죽는다. 레버를 당겨 선로를 바꾸면 그쪽 선로에서 혼자 일하는 인부가 죽는다. 당신이 열차 운전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 이번에는 당신이 철길 위 육교에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선로에서 일하는 다섯 명에게 돌진하는 것을 봤다. 마침 당신 앞에 덩치가 엄청난 사람이 있다. 당신이 이 사람을 선로로 밀면 한 사람이 희생되는 대신 다섯 명이 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치철학자는 여기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 벤담의 공리주의, 우리는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 각자의 도덕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칸트의 자유주의 등을 말할 것이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같은 예를 들어 강의했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뇌 어디가 작동하는지를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로 측정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이 책 3부 '뇌와 윤리' 편이다.

    선로 변경 레버를 당기면 '이성적 추론' 영역이 작동했다. 덩치 큰 사람을 밀지 말지 고민할 때는 '감정' 반응과 관련된 뇌 영역이 작동했다. 전자가 벤담의 뇌라면, 후자는 칸트의 뇌인 셈이다. 레버를 당길 때와 달리 사람을 미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뇌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진화했기 때문이다.

    뷔페만 가면 과식하는 이유, 腦는 알고 있다
    책은 작년 봄 한국심리학회에서 열린 '뇌와 통하다'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비롯됐다. 부제를 '뇌과학의 A에서 Z까지'로 붙여도 좋을 만큼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다. 심리학자와 과학철학자, 정신과 의사, 교육학자 등 다양한 배경의 저자들이 최신 뇌 연구 성과를 들어 일상의 소소한 것까지 설명한다. 왜 뷔페에서는 과식하는지, 눈 가리고 마시면 똑같은데 왜 펩시콜라는 코카콜라를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에 빠지면 왜 키스를 하는지 등등 질문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시작과 끝은 늘 '나'이다.

    거침없이 달리는 세상에서 개인은 늘 힘없이 휩쓸린다. 뇌과학은 내 판단이 옳고 그른지 말해줄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해명해줌으로써 더 좋은 길을 찾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열차가 아무리 엄청난 속도로 달려도 그 안에 들어가면 조용히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법이다.

    책 말미나 아니면 별책 부록으로 뇌의 각 부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픽을 담았다면 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래도 순서를 무시하고 궁금한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돼 좋은 백과사전 하나를 옆에 둔 듯한 든든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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