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악마가 아니다… 좋은 사회 만들 수 있는 짝

  • 최성환 고려대 겸임교수·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

    입력 : 2013.11.16 03:02

    금융비판하던 노벨상 수상자의 금융 변호
    모기지 자체는 잘못된 제도 아니야… 금융은 사회적 문제 풀 '미완성의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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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금융시대

    로버트 쉴러 지음|노지양·조윤정 옮김
    RHK|455쪽|1만7000원


    자동차 대부분이 제한속도를 약간 혹은 많이 어기면서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간다. 2011년 미국 금융 위기 청문위원회에서는 그것을 '광기의 시절'이라고 불렀다. 정경 유착과 부의 편중이 금융 위기의 시발점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그러나 "사태의 원인을 몇몇 이기적인 자들의 탐욕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비유를 확대하면, 자동차 설계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도로 교통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핸들을 잡을 필요가 없는 시스템을 목표로 삼을지도 모른다. 쉴러는 이 책에서 "금융기관의 구조적 부실이 위기의 핵심"이라면서 "금융은 세상의 적(敵)이 아니라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다"라고 역설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금융을 변호하다

    과연 금융은 약탈자이자 악마의 산업인가. 그렇다면 30년 넘게 금융으로 밥을 벌어먹고 있는 필자에겐 끔찍하면서도 허망한 일이다.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쉴러를 포함해 3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주식이나 채권시장에서 당장 며칠 뒤의 가격은 맞힐 수 없지만 3~5년 정도의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고 밝혔다.

    쉴러는 2000년 3월 내놓은 '이상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책에서 닷컴 버블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자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그가 부동산 거품을 지적한 뒤 미국 부동산 시장이 폭락세로 돌아섰다. 족집게 예언자이자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쉴러가 이번엔 금융을 변호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본 월스트리트 야경. 로버트 쉴러는 “금융에는 빈틈이 존재하지만 더 풍요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도록 도울 잠재력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본 월스트리트 야경. 로버트 쉴러는 “금융에는 빈틈이 존재하지만 더 풍요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도록 도울 잠재력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최순호 기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언급하면서 그는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불법과 사기를 간과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그렇게만 한정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눈앞에는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제 기능을 못하는 금융 시스템이 놓여 있다. 시스템 개선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결국 핵심을 놓치고 발전 기회도 잃게 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예측과 과도하게 낙관적이었던 신용평가 때문에 일어났다. 하지만 모기지는 장기대출을 통해 내 집 마련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해준 제도다. 이 밖에도 금융의 순기능은 얼마든지 있다. 주식시장과 주식회사 제도는 일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본을 통해 대규모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기회와 위험을 분산시킨다. 보험과 연금, 적금은 개인의 예상치 못한 손실이나 어려움을 대비하거나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쉴러는 "성장의 주춧돌인 금융 시스템이 재앙의 원흉처럼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 "금융개혁을 억제하기보다는 풀어주어야 금융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썼다.

    금융은 사회문제를 푸는 도구

    그렇다면 이 책의 원제인 '금융과 좋은 사회'가 의미하듯 금융이 일반 국민의 차가운 시선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따스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쉴러는 먼저 금융이 기술 발전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좀 더 익숙하고 친숙한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마케팅함으로써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예를 들면 기피 대상으로 여기던 '주택대출'은 '모기지'로 바꿔 부른 이후 주택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면서 크게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192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컸던 '투자펀드(Investment Fund)' 또한 '뮤추얼펀드(Mutual Fund)'로 이름을 바꾸면서 좀 더 민주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금융이 위험관리자 또는 부자를 위한 대리인에 머물 게 아니라 더 많은 사회구성원을 위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서민주택, 노인빈곤, 대학등록금 등과 같은 고질적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중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금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궁극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 시스템의 맹점을 짚으면서 발전 아이디어를 제시한 책이다. 쉴러는 "금융은 인간이 만든 미완성 발명품"이라면서도 "'금융'과 '좋은 사회'가 양립하기 어려운 것 같지만 혁신의 힘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어울리는 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경험한 금융 위기의 추악함 때문에 금융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폐기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지금의 풍요를 안겨준 경제 발전의 역사는 결국 우리가 금융 시스템에 기술적으로 적응한 역사다." 금융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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