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것은 진짜인가… 평생 實在를 의심한 사회학자

  • 배영달·경성대 프랑스지역학과 교수

    입력 : 2013.11.16 03:02

    [불멸의 저자들] 장 보드리야르

    걸그룹은 '소녀'를 흉내내고 소녀들은 '걸그룹' 따라한다… 그렇다면 누가 '오리지널'인가
    실재보다 실재적인 것에 포위된 脫근대 사회의 모순을 규명하다

    걸그룹 '여고시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가수로 활동하는 이들은 성인이지만, 여고생 교복을 입고 여고생처럼 꾸몄다. 이들이 인기를 끌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학생들은 걸그룹 '여고시대'처럼 치마를 싹뚝 자르고 그들처럼 눈화장을 한다. 오리지널이 있기에 그들의 '모방품'이 생겨났지만, 그 모방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오리지널이 모방품을 흉내내는 단계에 이른다. 그러면 걸그룹의 외양을 모방한 여고생은 '오리지널'인가, '모방품'인가. 당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대체 오리지널이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장 보드리야르(Baudrillard ·1929~2007)다. 끊임없는 도전과 도발로 특유한 사유세계를 구축한 그는 프랑스 사상운동에서 중요한 사회학자였다. 문제적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술의 음모'를 통해 그는 지식 세계에 끊임없는 사유의 문제를 제기했다.

    대표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그는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실재, 즉 초과실재(시뮬라크르)에 포위되어 버린 탈근대의 존재론적 조건을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부한 예증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장 보드리야르 사진
    /조인원 기자

    탈근대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시각이 집약적으로 녹아 있다. 탈근대는 사물의 의미와 지위가 바뀌고 실재가 문제시되면서 초과실재와 시뮬라시옹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는 세계다. 이런 세계에서는 도처에 사물이 범람하고 포화 상태에 도달하기 때문에 사물이 이상증식하고 이상발달한다. 그는 이것을 '사물의 황홀경'이라고 했다.

    "황홀경은 의미를 상실하기에 이르기까지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공허한 형태 속에서 빛나는 모든 사물에 고유한 특성이다." 가령 패션은 아름다운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의 황홀경이자 소용돌이치는 미학의 공허한 형태이다. 텔레비전은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실재, 즉 실재의 황홀경이다.

    이 세계에서는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추구되는 것, 바로 극단과 극치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가령 오늘날 스마트폰은 의사소통의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여 의사소통을 실재 의사소통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만드는 '의사소통의 시뮬라시옹 모델'이다. 과잉의 의사소통이 의사소통의 부재 혹은 의사소통의 황홀경을 초래한다.

    보드리야르는 탈근대 시대를 "정보는 점점 많아지고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빗댄다. 여기서 의미가 사라진다는 말은 가치의 실재, 진실의 실재처럼 의미의 실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보드리야르에게 과잉의 실재, 즉 초과실재를 생산해내는 시뮬라크르의 무한한 힘은 악마와 같다. 그 악마적 힘에 의한 실재의 붕괴가 일어난 뒤에 그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실재의 회복을 고민했다. 시뮬라크르라는 허상이 부유하는 세계는 분명히 허무주의적이며, 그곳에서 시뮬라크르는 악마적 권능을 지닌다. 보드리야르는 실재를 회복시키기 위해 실재를 위협하는 이 시뮬라크르라는 악마에 대항할 것을 권유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우리가 사태의 근원에까지 파고들면서 현실을 의심하고 뛰어넘는다면, 그의 삶과 사유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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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보드리야르, 더 알고 싶다면]

    사회학과 철학의 테두리 밖에 머물면서 한곳에 구속되기를 거부한 보드리야르는 살아 있을 때 책 50여권을 펴냈다. 대표작은 세계적으로 그의 존재를 알린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시뮬라시옹'(민음사)이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다른 중요한 책으로 '사물의 체계'(지만지)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기호의 정치경제학비판'(문학과 지성사)을 들 수 있다. 이 책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그의 사유 세계에서 핵심적 자리를 차지한다. 보드리야르는 이들을 통해 소비사회와 현대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 새로운 성찰의 영역을 확립했다. 필자가 쓴 '보드리야르의 아이러니' '사유와 상상력'(동문선)은 그의 이론과 사유를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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