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 에든버러는 천재의 도시였다?

    입력 : 2014.03.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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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과 사회

    이영석 지음|아카넷|444쪽|2만원

    "에든버러의 교차로라고 하는 이곳에 서 있으면, 몇 분 이내에 천재와 지식인 50여명을 만나 악수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시장을 지낸 윌리엄 크리치(1745~1815)는 에든버러 중심가 로열 마일 중심부의 머캣 사거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에든버러는 '북구의 아테네'라고 할 만큼 계몽운동의 중심지였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 논리실증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 에든버러대 학장을 지낸 역사학자 윌리엄 로버트슨 모두 이곳에서 활약했다. 18세기 초만 해도 정치·경제적으로 뒤처진 스코틀랜드가 영국은 물론 유럽 문화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번성한 이유는 뭘까.

    영국 사학자인 저자는 1707년 잉글랜드와 합병한 이후, 스코틀랜드인들이 문화적 성취를 통해 정치적 종속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목사, 변호사, 교사, 교수 등 문필가 집단을 비롯해 그들의 글을 읽고 강연을 들으려는 지식 대중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교육을 중요시한 장로교회의 정책, 에든버러·글래스고·애버딘·세인트앤드루스 대학 등 인근 네 대학의 경쟁과 학문적 교류가 계몽운동을 꽃피우는 원동력으로 거론된다. 번영은 19세기 들어 급속히 쇠락했다. 문화 융성을 뒷받침할 경제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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