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쌓인 당신의 흔적… 떠나기 전 뭘 지우고 싶은가

    입력 : 2014.03.31 00:32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쓴 김중혁, 인터넷 흔적 지워주는 탐정 이야기

    “인간의 정체성은 사라질 때 뭘 남기고, 뭘 지우느냐에 달려 있겠죠”라는 소설가 김중혁 사진
    “인간의 정체성은 사라질 때 뭘 남기고, 뭘 지우느냐에 달려 있겠죠”라는 소설가 김중혁. /이명원 기자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 소설가 김중혁은 유쾌하고 건강한 상상력의 작가로 꼽힌다. 컴퓨터, LP레코드, 녹음기, 포르노, 좀비에 이르기까지 김중혁이 손을 댄 사물들은 생물처럼 움직이면서 우리 시대를 명랑하고 맹랑하게 풍자한다. 김중혁은 그런 솜씨 덕분에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 작가상, 오늘의 예술가상을 두루 수상했다.

    김중혁이 이번엔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을 냈다. 경찰 출신의 사립 탐정이 주인공이다. 그는 의뢰인이 컴퓨터에 남긴 기록을 불법으로 지워주는 딜리터(Deleter)로 살아간다. 물론 이런 직업은 실제로 있지 않고, 소설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인터넷이 한 개인의 흔적을 쌓아두는 시대에 인간이 느끼는 새로운 불안을 그린 소설이다. 김중혁은 2007년에 단편 '멍청한 유비쿼터스'를 통해 '가장 안전한 컴퓨터는 꺼진 컴퓨터이고, 가장 안전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다. 해킹에 노출된 컴퓨터에서 완전 삭제돼야 인간이 비로소 진정한 죽음을 맞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중혁은 이번 장편을 내며 "짧은 삶을 보내는 사람이 뭘 남기고 싶어하고, 뭘 지우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타인에게 남긴 이미지를 죽은 뒤에도 좋게 유지하길 원한다. 그래서 타인과 공유한 기억과 흔적을 조작하려는 욕망을 품기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 사립탐정 구동치는 죽음 이후 평판을 두려워하는 의뢰인을 비밀리에 만난다. 그는 의뢰인이 지워달라고 한 사이버 기록뿐 아니라 타인에게 보낸 편지와 사진도 몰래 없애버린다. 그러나 그는 의뢰인의 비밀을 지워주고는 의뢰인 몰래 그 비밀을 보관한다. 김중혁은 "탐정이란 직업은 소설가와 비슷한 것 같다"며 "타인의 비밀을 찾아내 매끈하게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탐정과 작가는 똑같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의뢰인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탐정이 살인사건에 얽히는 이야기를 그린다. 피살자는 살아있을 때 탐정에게 인터넷 흔적 삭제를 부탁했다. 그러나 피살자의 유품 중 태블릿 피시가 사라지자 탐정은 이를 찾기 위해 사건에 깊이 발을 집어 넣게 된다. 탐정은 타인의 과거를 지우는 일에 대해 점차 회의하면서 실존적 고뇌에 빠진다. 죽음 이후의 삶을 꾸미려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환멸에 빠진다.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의 정체성도 고민하게 된다.

    서구 문학에선 탐정이 자아 탐구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폴 오스터의 '유리 도시'에선 작가가 탐정 노릇을 해 정체성 찾기에 나선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선 기억상실증에 걸린 탐정이 자기 과거를 추적한다. 김중혁은 한국 문학에선 보기 드물게 인간을 냉소적으로 보면서 삶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탐정을 그렸다.

    이 소설의 중심 공간은 '악어 빌딩'이란 건물이다. 철물점, 합기도장, PC방, 이탈리아 음식점, 탐정 사무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업체 대표, 음지로 숨은 무술단원, 소설을 몰래 쓰는 형사까지 얽힌다. 작가는 "얼룩덜룩한 악어 가죽처럼 잡다한 업종이 모여 있는 건물을 통해 우리 시대의 풍속도를 은유하고 싶었다"며 "이 건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방사형(放射形)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를 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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