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이야기 중독자'… 생존 본능이니까

    입력 : 2014.05.10 03:01

    [인터뷰] 조너선 갓셜

    이야기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 "진화는 무지막지한 실용주의자"
    스마트폰은 敵 아닌 '주머니 도서관'… 이야기 전달 장치는 더욱 진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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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 애니멀

    조너선 갓셜 지음|노승영 옮김 | 민음사|296쪽|2만2000원

    조너선 갓셜은 화창한 가을날 고속도로를 달리다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컨트리 음악이 잡혔다. 척 윅스가 부른 '신데렐라 훔치기(Stealing Cinderella)'.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남자의 이야기다. 여자 친구 아버지가 방에 들어간 사이 남자는 그녀가 어릴 적 신데렐라를 연기하는 사진, 아빠를 올려다보며 춤추는 사진을 본다. 남자는 그 순간 자신이 신데렐라를 훔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딸이 둘 있는 갓셜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길가에 차를 댔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조너선 갓셜 사진
    조너선 갓셜(사진 왼쪽).
    미국 워싱턴&제퍼슨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갓셜은 "노래가 아니라 거기 담긴 이야기가 나를 후려쳤다"고 말한다. 우리는 책이든 영화든 노래든 이야기를 경험할 때 화자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도록 내버려 둔다. 갓셜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진화생물학·심리학·신경과학을 동원해 그날 고속도로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스토리텔링의 거대한 힘에 대해 파헤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제목이 왜 '스토리텔링 애니멀(Storytelling Animal)'인가.

    "인간만이 이야기를 한다. 수만 년 전, 인류가 소수이고 정신이 미성숙했던 시절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도 인간은 종이·무대·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픽션에 열광한다. 인간은 '이야기 중독자'다. 이야기는 중력(gravity)처럼 어디에나 있고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예전보다 덜 읽는다.

    "픽션을 버린 것이 아니다. 종이가 스크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TV나 영화도 픽션의 매체이고 음악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디오 게임, 스포츠 중계, 법정에서도 스토리텔링이 점점 중요해진다. SNS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하려는 충동을 보라. 우리는 뼛속까지 이야기에 푹 젖어 있다."

    ―스마트폰은 독서의 적(敵) 아닌가?

    "정반대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황홀한 도구, '주머니 속 도서관'이다. 스마트폰 덕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더 편하고 매력적인 형태로 만나고 있다."

    갓셜은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다. 쓸모없는 것 같은 픽션이 인간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뭘까. 갓셜은 "진화는 무지막지한 실용주의자"라는 말로 그 수수께끼를 설명한다. 생물학적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야기(음모·책략·제휴·인과관계)로 가득하며 이를 탐지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인류는 불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림자를 보며 연극이라는 놀이를 발명했다. 이야기는 사람들을 공동 가치로 결속시키는 사회적 접착제였다."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서관에서 런던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는 사진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서관에서 런던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꽃꽂이, 스포츠, 도박 같은 여가 활동과 달리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든 누구나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민음사 제공

    ―어떤 믿음을 변화시키려면 픽션이 논픽션보다 효과적인가?

    "우리는 논픽션을 읽을 때와 달리 픽션 앞에선 무장을 해제한다. 이야기에 빠질 땐 이성의 방패를 내려놓는 것이다."

    ―픽션을 계속 읽으면 성격도 바뀌나?

    "톨스토이는 '이야기는 전염병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생각과 정서, 가치관이 독자를 감염시키는 것이다. 이야기가 일시적으로 우리 머릿속에 희망, 공포, 목표를 빚어낸다는 심리학 연구가 여럿 나왔다."

    ―픽션을 읽는 것을 항공모함에 제트기를 착륙시키는 조종사의 모의 비행에 빗댔다.

    "일상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엔 대가가 따른다. 문학은 공짜로 그 감정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인간 생활의 '모의 비행 장치'다. 영화 보는 사람의 뇌를 fMRI(기능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하자 스크린의 모든 감정이 뇌에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야기의 미래는 어떤가?

    "낙관한다. 이야기를 전하는 디바이스는 더 진화할 것이다. 비디오 게임과 가상현실 플랫폼의 장래가 특히 밝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이야기를 향한 욕망도 그럴 것이다."

    독일 나치스(Nazis)는 1933년 5월 10일 밤 책 화형식을 벌였다. 유대인, 사회주의자, 반(反)독일적인 작가 등이 쓴 책을 태우며 독일 문학을 불로 정화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알고 있다. 책이 소각되는 곳에서는 인간성도 소각된다.

    [이야기의 힘] 픽션을 오래 '투약'하면 독자의 성격도 달라진다

    영화 '레 미제라블'이 흥행한 것은 '우리 대신 죽는 주인공' 때문일지도 모른다. 픽션은 현실 바깥의 도피처다. 비밀과 죄의식을 다룬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에서 여주인공 한나는 책들을 발 받침대로 써 자살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한 안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이렇게 끝난다. "새롭고 찬란한 삶이 시작될 것 같았다. 첫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더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기 전후에 성격 검사를 했다. 대조군인 논픽션 독자와 달리 픽션 독자는 소설을 읽고 나서 성격에 경미한 변화가 있었다.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에 들어가 자아 감각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물음을 던졌다고 갓셜은 썼다. 픽션을 조금씩 오래 '투약'하면 결국 커다란 성격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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