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春은 영원하다?… 그건 거짓말이야"

    입력 : 2015.02.28 11:58

    [무라카미 류日]

    청춘의 상징이었던 작가… 노후에 대한 소설은 처음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 하지만 경제력 뒷받침돼야"

    무라카미 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무라카미 류 지음|윤성원 옮김북로드|376쪽|1만2800원

    "나이가 들면서 점점 1년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실감을 가졌던 적이 있을 것이다. 6세의 1년은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의 1/6이지만, 60세가 되면 단순하게 1/60이 되어버린다."

    무라카미 류〈사진〉의 새 소설집 '55세부터 헬로 라이프'를 읽고 창문 너머를 한번 바라봤다. 청춘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류가 인생의 황혼을 이야기하다니. '69'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의 작가도 올해 벌써 63세다. '55세부터'는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중장년 세대의 가느다란 희망 이야기. 냉혹한 현실을 들려주지만, 그래도 방점은 '희망'에 있다. 이메일로 그를 만났다.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작가는 이제 절제와 겸양이 가득했다.

    ―무례하게 묻는다면, 당신도 '나이'가 들었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청춘이 영원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재정 악화로 사회보장비가 치솟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의 노후, 즉 가난한 노후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일본에서는 정년 이후 노골적인 격차가 생기고 있다. 요컨대 노후의 삶은 녹록지 않지만, 이러한 것을 절실하게 그린 작품은 거의 없으니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60세를 넘었다는 사실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처음 얼핏 봤을 때, 제목을 '해피 라이프'로 착각했다. '55'라는 숫자와 '헬로 라이프'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일본에는 '헬로워크'라는 일본식 영어를 사용한 공공 직업안내소가 있다. 여기서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알선한다. 55세라는 나이는 노후를 생각할 때 하나의 지표가 된다. 그래서 노후로 접어드는 사람들의 현실 이야기를 아우르는 제목을 정했다."

    55세부터 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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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자신의 청춘 시절,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자신의 독자들도 인생의 후반전을 뛰고 있는 상황.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다만 나이 들면 남은 시간이 점점 짧아지니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어렵고, 체력도 정신력도 떨어져 경제적으로 곤궁하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 쉽다. 노인들이 즐겁게 산다는 것은 안정된 경제적 바탕이 없으면 매우 어렵다. 소설 곳곳에 경제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신과 같은 세대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물은 모두 '나이 듦'의 영향을 받는다. 예전에는 대가족제여서 돌봐줄 가족이 곁에 있었지만, 핵가족이 보편적인 현재는 노인도 혼자서 살아가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기간에 준비되는 것이 아니므로,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번 책에 실린 단편 '결혼상담소'에는 한류 스타에 홀린 중년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가로서 또 대중문화 전문가로서 당신이 본 한류 드라마의 장점과 단점은.

    "한류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일본과 달리 '침묵은 금'이라든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무탈한 인간관계가 아닌, 직접적으로 상대를 만나서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종종 말해버리고, 품위 있어 보이는 여성이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시청자의 흥미를 이어가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공이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이런 통속적 흥미를 이용한 연결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참고가 된다. 이런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결혼상담소’‘캠핑카’‘펫로스’등 이번 책에 실린 5편의 작품에는‘희망’과‘위안’의 상징으로 차(茶)나 음료수가 등장한다. 무릇 사람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면 패닉에 빠져 냉정을 잃는 법. 무라카미 류는“그럴 때는 우선 좋아하는 음료를 천천히 마시다 보면 누구든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유를 찾을 수 있다”면서“패닉에 빠지지 않고, 우선 차분하게 주위와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라고 했다.
    ‘결혼상담소’‘캠핑카’‘펫로스’등 이번 책에 실린 5편의 작품에는‘희망’과‘위안’의 상징으로 차(茶)나 음료수가 등장한다. 무릇 사람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면 패닉에 빠져 냉정을 잃는 법. 무라카미 류는“그럴 때는 우선 좋아하는 음료를 천천히 마시다 보면 누구든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유를 찾을 수 있다”면서“패닉에 빠지지 않고, 우선 차분하게 주위와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라고 했다. /북로드 제공
    오랫동안 류는 또 한 명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two 무라카미'라고 불려왔다. 최근 하루키는 9년 만에 가진 독자와의 인터넷 대화에서 종종 무라카미 류를 인용했다. "내가 아니라 또 한 명의 무라카미에게 한 질문 아니냐"는 농담도 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친하다고 알려진 터라, 종종 하루키를 보는지, 어떤 농담을 주고받는지 물었다. "이제 류는 어른이 된 것 같은데, 다른 무라카미는 여전히 철이 덜 든 것 같다"는 한 독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했던 무라카미 류는, 이 물음만큼은 공란으로 남겨뒀다. 직전 그의 대답처럼, '침묵은 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가 인간관계의 좌우명인 것일까. 하루키의 청춘소설을 여전히 좋아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또 다른 무라카미의 침묵이 그리 싫지 않았다.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그의 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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