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고백 시대'의 자서전이란

    입력 : 2015.04.04 11:46

    국내 유일 '자서전' 전공 교수, 루소 등 작가들 진술방식 비교
    "SNS '자기고백' 쉬워졌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글쓰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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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호식 지음ㅣ민음사ㅣ304쪽ㅣ1만9000원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누구나 글을 쓰고, 자신의 삶을 실시간 고백한다. 모두가 작가인 세상. 그런데 허탈하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왜 사람들은 나를 주목해주지 않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흔하면 더 이상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는 단순한 '표현'을 '창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남과 나를 동시에 갉아먹는 순간의 감정 배설을, 독창적인 예술이라고 뻗대는 건 아닐까.

    서울대 불문과 유호식(54·사진) 교수의 '자서전'을 이번 주 Books의 가장 앞머리에 내세운 이유는, 자서전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 유일(唯一) 대학교수의 첫 번째 대중 저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자기 고백'이 범람하는 SNS 시대에, 진정한 자기 성찰과 새로운 삶의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밀도와 순도가 함께 높은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몽테뉴(1533~1592), 장 자크 루소(1712~1778), 미셸 레리스(1901~1990)…. 지금 유행하는 '자기에 대한 글쓰기'의 기원(起源)과 분기점(分岐點)이 된 당신의 선배들이다. 유 교수는 시대에 따라 자신에 대한 글쓰기 스타일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사유(思惟)를 요구하는 문장으로 분류하고 정리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였습니다"('고백록' 4권 4장)라고 털어 놓는 1600년전 교회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의 겸손을 보라. 그에게 주체는 '나'가 아니라 '신'이었다. 중세 자서전의 목적이 구원에 있음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300년 전의 평범한 시계공 아들은 이제 신이 아니라 인간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한 인간을 사실 그대로 털어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 내보일 작정이다. 이 인간은 나 자신이다."(루소 '고백록')

    유호식 교수
    유호식 교수
    그의 목적은 자신을 핍박하는 당대의 모든 권력으로부터 개인 루소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같은 이름의 '고백록'인데도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 사이에는 이렇게 건널 수 없는 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로 다시 돌아온다. 자기에 대해 글을 쓰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법. 그런데 한 발자국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내 마음을 과연 내가 다 알고 있나.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노래하는 정훈희처럼,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나를 객관화하는 일이 가능할까. 정체성이란, 탐구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없는 모호한 유령이라고 생각한 현대 작가가 레리스다.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낯선 이 프랑스 작가는 진정한 자아를 규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아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서전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자서전을 한 번만 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쳐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렬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글쓰기의 소명을 깨닫는다. 그 순간 이제 우리의 글쓰기는 단순한 투정을 넘어, '작가'이자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는 자기 고백의 가능성으로 한 단계 상승한다.

    이청준(1939~2008)의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가 발표된 게 1976년의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 윤지욱은 남의 자서전을 대신 써 주는 대필 작가. 추한 과거를 숨기려는 코미디언과 신념 과잉의 시골 농부에게 실망한 우리의 대필 작가를 내세워 진정한 반성과 참회의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희화적으로 풀어냈던 연작 소설이다.

    왼쪽부터 아우구스티누스, 레리스, 루소 자서전의 핵심 이미지. 루소는 영웅에서 건달로 추락하는 자신의 뿌리를 사과를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던 어린 시절 에피소드(맨 오른쪽)에서 찾고 있다. /민음사 제공
    왼쪽부터 아우구스티누스, 레리스, 루소 자서전의 핵심 이미지. 루소는 영웅에서 건달로 추락하는 자신의 뿌리를 사과를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던 어린 시절 에피소드(맨 오른쪽)에서 찾고 있다. /민음사 제공
    이제 선배들의 사례 연구를 넘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차례다. 자서전적인 성찰의 글쓰기는 삶을 디자인하는 한 가지 방식. 누구나 예외 없이 변화에 직면해 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영원한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시대다. 유 교수는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 인생의 첫걸음을 내딛는 젊은이나 인생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 있는 노년층에게 한정된 과업이라 할 수는 없다"면서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자신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 삶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매 순간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했다.

    서점에 가면 자서전·회고록 집필에 관한 기술적인 책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 책 '자서전'은 그 기술을 가르쳐주는 실용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왜 자서전을 쓰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글쓰기 열풍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를 윽박지르지 않고 알려준다. 그것도 50을 알면 100을 아는 것처럼 쓰는 사람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100을 알면서도 50밖에 모르는 것 같은 겸손과 압축의 '자서전적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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