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침묵의 집' 두 번째 개작한 '주름'

  • 뉴시스

    입력 : 2015.05.08 14:45

    "삶이란 끝이 없다. 삶이 계속되는 한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뒷덜미를 사정없이 잡아채어 수렁 속으로 내던지고 마는, 악마의 손길 같은 삶의 어두운 변수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왜 그 때는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까."(48쪽)

    회사 자금담당 이사인 50대 중반의 주인공 김진영은 큰 풍파 없이 무난히 지나면 상무이사 쯤은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그는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김진영보다 연상인 천예린은 매혹적인 팜므파탈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사통팔달 막힘이 없었고, 무슨 문제가 나와도 호(好) 불호(不好)가 분명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어휘 또한 적확하고도 새로웠다. 내 전신은 일종의 스펀지처럼 그녀의 모든 것, 눈빛과 제스처와 말씨 따위를 속속 빨아들였다."(107쪽)

    김진영은 천예린에게 깊이 빠져들고 그녀를 만나고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헛것이었다고 생각하며 간직해온 옛 꿈을 다시 꾼다. 천예린이 외국으로 떠나버리자 김진영은 일상도 버리고 천예린을 쫓아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소설가 박범신이 199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침묵의 집'을 개작한 '주름'을 한 차례 더 개작해 펴냈다.

    2006년 첫 개작 당시 분량을 원고지 2600장에서 1500장으로 대폭 줄이고 제목을 바꿨다. 이어 두 번째 개작에서는 결정적인 장면의 서술을 일부 바꾸고 분량을 300여 장 더 줄였다.

    50대 남자의 파멸과 또 다른 생성을 그린 작품이다. 죽음을 향해가는 시간의 주름에 관한 치열한 기록, 오랜 옛 꿈을 다시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 극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담겼다.

    박범신은 작가의 말에서 "완간된 책을 받아든 날 가슴 속 동통이 심해 강소주를 병째 마셨다"며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하는지 진술했고, 그것에 속절없이 훼손당하면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반역하다 처형된 한 존재의 역동적인 내면 풍경을 가차 없이 기록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집요하게 한 작품을 붙들고 있기는 처음이다"며 "깎아내고 깎아내고 하다가 마침내 단 한 줄로 삶의 유한성이 주는 주름의 실체를 그려낼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아마 나는 작가로 성숙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며 소회를 밝혔다. 432쪽, 1만3500원,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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