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사육기? 아니요, 인간에 대한 책입니다

  • 정이현 소설가

    입력 : 2015.08.29 03:00

    가디언, 2014 올해의 책 선정
    英 논픽션계 아카데미상인 새뮤얼 존슨 상도 받아

    "아버지 死後에 매 길들이며 고통 다스리고 사는 법 배워"

    '메이블 이야기'
    메이블 이야기|헬렌 맥도널드 지음|공경희 옮김|민음사|456쪽|1만5000원

    '길들이다'. 열네 살 때까지 나는 그것을 짐승을 가르쳐서 부리기 좋게 만든다는 뜻의 동사로만 알고 있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은 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우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언가를 길들인다는 건 곧 진정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여기 책이 한 권 있다. 날렵한 매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가 강렬하다. 제목은 '메이블 이야기'. 원제인 'H is for Hawk'라는 문장도 크게 병기되어 있어 이것이 매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매라면 대표적 맹금류가 아닌가. 진지하게 고백하자니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인간처럼 새라는 종에 대해 별다른 감흥 없이 살아왔다. 무심히 첫 장을 넘겼고, 곧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참매 메이블과 저자 헬렌 맥도널드.
    참매 메이블과 저자 헬렌 맥도널드. /민음사 제공
    '메이블 이야기'는 매를 길들이는 이야기인 동시에 고통 속에 놓인 한 인간이 다른 대상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고통을 넘어서는 과정을 담은 논픽션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젊은 학자 헬렌 맥도널드는 어느 평범한 저녁, 아버지의 급사를 알리는 전화를 받는다.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고통이 그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녀는 큰 충격을 받고 이어 깊은 상실감 속으로 빠진다. '정상적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어두운 방 속에 틀어박힌다. 조용하지만 그래서 아주 위험한 상태라고 스스로 진단할 정도다.

    그러다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두었던 매를 길들여보기로 결심한다. '참매는 신경질적이고 극도로 예민한 새여서 사람이 적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첫눈에 '나의 새'임을 알아보았던 어린 매 메이블과 동거하며 헬렌은 그것을 통감한다. 그러나 또한 그 말이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선만을 반영한 것임도 알게 된다. 매는 그저 매의 본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새에게 힘든 훈련을 시켜야만 한다는 딜레마와 싸우는 것도 인간이다.

    ‘메이블 이야기’는 영국 유력지 가디언의 201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논픽션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 존슨 상을 받았다.
    ‘메이블 이야기’는 영국 유력지 가디언의 201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논픽션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 존슨 상을 받았다.
    매를 훈련시키는 매잡이들은 종종 자신을 매와 동일시함으로써 매의 특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린 매는 그녀가 안간힘 쓰며 머물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순적 세계, 즉 죽은 아버지와 연결된 유년의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헬렌은 메이블을 길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깊은 고통을 길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배우게 된다. 상실감에서 벗어나려 매를 선택했고 매를 길들이기 위해 (현실에서) 도망쳤지만 어둠 속에서 한 일은 '매를 내 거울로 만든 것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진술하는 부분이 정말로 아름답다. 매를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그들과 소중한 우정을 만들어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손은 다른 사람 손을 잡으라고 있는 것이다. 손은 매의 횃대 노릇만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른 후 헬렌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매를 내 세계에 데려왔고 그러다가 내가 매의 세계에 사는 체했다. 이제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분리된 채 행복하게 각각의 삶을 공유한다. (…) 메이블이 만든 게 아니라 아물도록 도와준 상처들이다.' 독자를 궁금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뒷이야기다. 결국 헬렌은 그 새의 줄을 완전히 끊고 자연으로 날려 보냈을까? 이제는 매 없이, 고통 없이 살고 있을까? 답은 작가 후기의 마지막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부분은 비밀로 남겨두겠다. 다만 마지막의 바로 앞 문장에서 그녀가 이렇게 썼다는 것은 말할 수 있겠지. '아버지가 떠난 후 이 세상에서 나는 법을 가르쳐준 나의 아름다운 참매에게 감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가 계속 등장하지만, 누가 이것이 매에 대한 책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 같다. 아니요, 인간에 대한 책이에요, 라고 힘주어 대답할 것 같다. 책의 원제인 〈H is for Hawk〉를 곱씹다가 무릎을 친다. 그러고 보니 'Human'의 머리글자도 h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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