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올리버 색스(1933~2015)

    입력 : 2015.09.05 00:06

    명성 높은 '의학계의 계관 시인'… 12권 국내 번역, 자서전 곧 출간
    투렛 증후군·자폐 등 희귀장애 '감동적 아라비안나이트'로 풀어
    전세계 독자, 추모 열기 뜨거워

    거의 전작(全作)인 12권이 번역되어 있지만, 올리버 색스(Sacks·1933~2015)의 이름은 많은 독자에게 낯설 것이다. 지난 일요일(8월 30일), 신경학 전문의로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 예고된 부음이었다. 올리버는 올해 2월 희귀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삶을 긍정하겠다는 소회와 다짐을 뉴욕타임스 칼럼으로 밝혀 국경을 넘는 울림을 던졌다. 올리버 색스의 삶과 전 작품을 Books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올리버 색스가 지지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명망 있는 의사여서가 아니다. 하찮게, 심지어 무능한 것으로 여기는 연약한 존재들을 위해, 자신의 예외적 재능을 평생 바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희귀한 재능은 이런 것이다. 이론가인 동시에 스토리텔러,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낭만적인, 지성과 휴머니티로 요약되는 어떤 따스함.

    지난 2월의 칼럼이 먼저 화제가 되었지만, 7월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실린 또 하나의 칼럼 '나의 주기율표'가 더 인간미 넘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주기율표다. 화학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따분해할지 모를, 원소들을 주기적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건조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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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 제공

    누구나 죽음에 대처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올리버에게는 '주기율표'였다. 그의 책상 한쪽 끝에는 작고 예쁜 상자가 있다. 들어 있는 건 81번 원소 탈륨. 작년 7월 영국의 친구들이 올리버의 81번째 생일을 맞아 보내준 선물이었다. 탈륨 옆은 납에게 헌납한 공간이다. 올해 7월의 82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82번 원소. 납에게 할당한 동그란 영역 바로 옆은 비스무트의 땅이라고 했다. 예상했겠지만, 이 이름조차 낯선 원소가 83번이다. 올리버는 "나는 살아서 83번째 생일을 맞을 것 같지 않지만, 주변에 온통 83이 널려 있는 것이 어쩐지 희망차게 느껴진다"고 썼다. 비스무트의 반대쪽 끝 책상 위에는 (4번 원소인) 베릴륨 조각이 놓여 있다. 올리버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곧 끝날 내 인생이 얼마나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었는지를"이라며 칼럼을 맺었다.

    그의 글쓰기는 늘 이런 식이었다. 건조한 주기율표가 인간의 존엄을 실증하는 드라마로 바뀌듯, 암호 같은 용어와 숫자들로 가득한 임상보고서의 세계는 올리버에게서 '감동 넘치는 아라비안나이트'가 되었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대표적이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그가 다루는 희귀성 신경 장애는 의학 용어로만 나열하면 이런 거다. 시각 인식 불능증, 음색 인식 불능증, 역행성 기억상실증, 신경매독, 위치감각 상실, 투렛 증후군, 자폐증….

    하지만 올리버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시각 인식 불능증'이 아니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다. 진료를 마친 환자 P는 집에 가기 위해 모자를 찾지만, 모자 대신 옆에 앉은 아내의 머리를 집어들려 한 것.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역행성 기억상실증을 요약하기보다,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1945년 종전과 함께 그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의 인생 이야기.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또 하나의 대표작 '깨어남' 역시 마찬가지다. 수면병(기면성 뇌염)으로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던 무기력 인간들이 신약 엘도파 덕분에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되살아나는 장면을 묘사한 '깨어남'은, 사화산(死火山)으로 살아온 환자들이 사실은 살아있는 인간이었음을 감동적으로 증명한다.

    '편두통'(1970)으로 시작한 그의 글쓰기 여정은 '깨어남'(1973),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198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 '목소리를 보았네'(1989), '화성의 인류학자'(1995), '색맹의 섬'(1997)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엉클 텅스텐'(2001), '오악사카 저널'(2002), '뮤지코필리아'(2007), '마음의 눈'(2010), '환각'(2012)으로 계속됐다. 올해 4월에 미국에서 출간된 자서전 '온 더 무브'는 지금 번역 중이다.

    의사의 치료 드라마는 읽기 부담스럽다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의 글은 환자나 의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언젠가는 환자로 바뀔 당신을 위해서 썼다. 아니, 정정한다. 의사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지만 지금 아픈 당신을, 올리버는 위로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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