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합니까? 당신은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입력 : 2015.09.12 09:38

    美 저널리스트 '불안 知性史'
    자신도 30년 항우울제 환자… 3000년 역사·최신 연구 모아
    중요한 것은 조절과 균형 "걱정꾼이야말로 철저한 일꾼"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
    반비|496쪽|2만2000원

    의학 관련 대중서 중 으뜸은 '글 잘 쓰는 의사'의 저술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이 스스로가 환자이면서 글솜씨가 빼어난 경우. 물론 조건이 있다. 자기 연민이나 동정에 빠지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분야를 철저하고 성실하게 취재할 것.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가 그 균형 있는 글쓰기의 모범 사례다. 거침없는 솔직함과 꼼꼼한 자료 조사로 빚은 이 책은 30년 동안 정신과 치료와 항불안제를 장복(長服)했던 미 문예지 '애틀랜틱'의 에디터 스콧 스토셀(46)의 '불안의 지성사'다. 자신의 결혼식에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던 '광장 공포증' 환자의 슬픈 자서전이며, 동시에 불안 장애의 고통과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3000년의 역사·철학·문학·최신 학술 연구를 가로지른 르포르타주다. 하나 더. 여기 더해 유머러스한 글맛이 있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마렌과 너새니얼에게. 너희들은 무사하길'이라는 소망이 적혀 있다. 자학이면서, 동시에 자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위트 있는 시작이다.

    '불안'은 더 이상 특정 소수의 장애가 아니다. '불안한'과 '현대인'이 연관 검색어가 될 만큼, 동시대 인간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불치병이자 전염병. 물론 은유로서의 표현이지만, 그만큼 만연해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인 4000만명, 즉 일곱 명 중 한 명이 불안 장애를 겪는다. 한국인이라고 다를까. 최근 조사를 찾아보니,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2014년 항우울제 처방액이 무려 1379억원이었다. 2010년보다 22% 늘어난 액수다.

    스토셀은 불안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시도한다.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최신 학술 연구에서 불안에 대한 탐구를 한데 모으고, 저자의 직접경험과 함께 엮는다. /Getty Images/멀티비츠
    딱딱하고 때론 우울한 전문 분야를 숨김 없는 개인사에 포개 공감력을 높인 게 이 책의 매력이다. 가령 이런 대목이 있다. 취재차 케네디 일가를 방문했을 때, 일이 터져버렸다. 공황 장애와 광장 공포증은 물론, 과민성 대장증상까지 심각했던 스토셀은 버티고 버티다가 마침내 케네디 2세를 만났을 때 실수를 하고 만다. 당신이 예상하는 바로 그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뛰어들어간 화장실은 변기가 고장났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물을 내리자, 다시 한 번 당신이 예상하는 그 최악의 상황. 물이 흘러넘치고, 벽에 걸린 수건을 모두 바닥에 깔아 오수를 빨아들이고, 화장지의 마지막 한 장까지 모두 풀었지만…. 스토셀은 "부엌용 스펀지로 호수를 말리는 느낌"이라고 썼다.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다루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것이다.

    고백에 따르면, 스토셀은 열 살 때부터 같은 정신과 의사를 매주 한두 번씩 25년 동안 만났다. 사반세기 동안 그가 받은 치료의 목록은 불안 장애를 치료하는 현대 의학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그림책 보기, 주사위 게임, 최면, 의사소통 촉진법,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내면 아이 치료법, 에너지 시스템 치료법, 내적 가족 체계 치료….

    안타깝게도, 모두에게 들어맞는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현대 의학은 아직 불안 장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낙관도 비관도 없이, 스토셀은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마지막 장으로 당신을 위로한다.

    불안이 도덕심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불안 장애가 전혀 없는 사람은 나쁘게 말해 사이코 패스. 좋게 말해 모험심이 강하지만, 그 때문에 불륜과 외도에 몸을 던지다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불안 장애가 별로 없는 미국의 공군 조종사 그룹의 이혼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스토셀은 또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이 더 사색적이고 목표에 집중하며, 조직력과 계획력도 높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 중요한 것은 불안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다. 스토셀은 이 격언을 인용한다. "걱정꾼들이 가장 철저한 일꾼이자 가장 사려 깊은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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