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비밀책장] 산티아고 900㎞를 걸은 배낭엔 이 책이 들어 있었다

  • 정유정 소설가

    입력 : 2015.12.18 23:56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정유정 소설가
    정유정 소설가
    2014년 2월 첫날, 나는 '카미노'라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 길을 떠났다.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서쪽 땅끝, 피니스테레까지 총 900km에 이르는 길을 나 홀로 걸었다. 이전에 다녀온 히말라야와는 의미도, 목적도 조금 다른 여행이었다. 히말라야가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었다면, 카미노는 내 생애 가장 멀리 나아간 길이었다. 히말라야가 내 몸을 태우며 통과한 길이었다면, 카미노는 남루한 내 영혼과 끊임없이 싸운 지리멸렬한 여정이었다. 10㎏짜리 배낭에는 카미노안내서 대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들어 있었다.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빅터 프랭클은 내 삶에 '자유의지'를 심어준 정신적 스승이다. 삶이 힘겨웠던 20대에도, 암담하고 길었던 무명시절에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환멸이 덮쳐올 때에도, 그리하여 한 인간으로서 내적 균형의 회복이 절실할 때마다, 나는 그의 책을 읽는다. 카미노에서도 그랬다. 하루 평균 25㎞, 길을 잃거나 잘 곳을 구하지 못한 날엔 40, 50㎞까지 걸었고, 얼마를 걸었든 밤이면 꼬박꼬박 몇 쪽씩 읽었다. 이 '몇 쪽'은 모든 것이 무의미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나를 일으키는 마법의 주문이 돼주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양친과 형제,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그곳에서 그가 겪은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저녁놀에 감동하고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유머를 생각해내는 사람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빵조각을 누군가에게 줘버리는 사람들, 매일 아침 받는 차 한 잔으로 세수를 하는 사람들, 참혹한 순간에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종일관 덤덤한 그의 어조는 어둠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을 더욱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의 삶에, 삶이 펼쳐지는 이 세계에, 절망보다 힘센 '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건넨다.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삶은 우리에게 의미 즉, 살아가야 할 이유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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