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문학평론가 김현에게 보내는 戀書

    입력 : 2015.12.18 23:59

    어수웅 Books 팀장
    어수웅 Books 팀장
    어쩌면 우연이었을 겁니다. '작가세계' 겨울호를 읽게 된 것은. 한 주면 수백 권씩 쏟아지는 신간 중에서, 문학 계간지까지 실시간으로 챙겨보기는 어렵거든요. 설렁설렁 넘기다 눈을 떼지 못한 글이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 박철화(50)의 산문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2'. 그의 서울대 불문과 스승이자 지난주 40주년을 맞은 문학과지성사의 핵심멤버 김현(1942~1990)과의 인연기(記)이자 연서(戀書)더군요. 지난호에 이어 벌써 두 번째 글이었습니다.

    '따듯한'은 '따뜻한'보다 여린 느낌일 때 씁니다. 고심해서 선택했을 이 형용사가 필자의 삼가는 태도를 요약하더군요. 하지만 읽다보니 따듯함이나 따뜻함을 넘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시나 소설이 아니라 비평가의 글에서 느낀 이런 열기는 예외적 체험이었음을 저도 고백합니다.

    '철없던' 대학교 3학년 때 박완서의 '나목' 리포트로 선생에게 '발탁'된 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연구실로 꼭 찾아오라는 '지시'를 받은 일, 강원도 산골 출신 '시골뜨기'가 그렇게 스승을 독대하며 배운 삶과 문학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전라도 출신 시인 소설가가 왜 그리 많으냐고 묻자 스승은 '자연이 좋지'라고 답했고, '에이, 자연이라면 제 고향 강원도가 더 좋은데요'라고 반박하자, 스승은 다시 '거긴 너무 맑지'라고 답하죠. 고향은 자연의 서정이 넘치는 곳이지만, 전라도에 비해 '세계의 서사와의 균형은 부족했다'는 걸 제자는 그때 깨닫습니다. 미국 여배우 킴 베이싱어의 생물학적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해 눈요기로 본 영화 '나인 하프 위크'에서조차 스승은 정신분석학의 가르침을 줍니다. 제자는 "축생에서 사람으로 조금씩 존재 이전했다"고 진술하더군요.

    단순히 어떤 사제관계의 미담을 소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사랑을 통해 타인과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소중한 경험인지를 이 진솔한 글이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툭하면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진정한 공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을 지닌 이 평론가가 부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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