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死因… 자살 아닌 10대들의 총기 오발?

    입력 : 2016.02.06 00:32

    복부에 박힌 총알의 각도 등 반 고흐 죽음에 얽힌
    낭만적 신화, 빈틈·모순점 짚어 의문 제기
    내면의 붕괴·발작 증세 속에서도 '까마귀가 있는…' 등 걸작 쏟아내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책 사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
    최준영 옮김|민음사|972쪽|4만5000원

    10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은 아마도 마지막 부록일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죽음에 얽힌 낭만적인 신화에 대해 이 책은 정색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반 고흐가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는 자살설은 베토벤의 청각 장애처럼 예술가의 비극적 운명을 입증하는 사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출신의 예술사가(藝術史家)이자 작가인 저자들은 반 고흐의 자살설에서 빈틈과 모순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뒤 대담한 가설을 제시한다.

    우선 자살의 총상은 대부분 머리에 똑바른 각도로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반 고흐의 경우에는 복부(腹部)에 비스듬한 각도로 총알이 들어왔다. 또 총상을 입은 화가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800m의 거리를 걸어갔다는 점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자들은 반 고흐가 파리 북부 마을 오베르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을 당시에 10대 소년이었던 르네 세크레탕의 1950년대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재구성에 나선다. 총격이 발생한 장소는 밀밭이 아니라 건너편의 농가 안마당이었을 것이며, 심지어 10대 소년들의 우발적인 총기 오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 고흐의 죽음은 과연 자살이 아니라 철부지 소년들이 저지른 과실치사였을까.

    빈센트 반 고흐가 숨지기 직전인 1890년에 완성한 ‘까마귀가 있는 밀밭’. 그가 숨을 거둔 오베르에서 그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숨지기 직전인 1890년에 완성한 ‘까마귀가 있는 밀밭’. 그가 숨을 거둔 오베르에서 그렸다. /민음사 제공
    2011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반 고흐 평전의 국내판인 이 책은 친숙한 '빈센트 반 고흐' 대신 '핀센트 판 호흐'라는 네덜란드식 표기법을 택했다. 다소 생소한 외래어 표기 때문에 초반에는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더디다. 문장은 단문(短文) 위주로 정갈하고 반듯하지만, 반대로 책의 호흡은 거대 서사시처럼 길다. 반 고흐가 본격적으로 작품 창작에 들어가는 건 200쪽을 넘긴 이후이며, 500쪽에 이르러서야 초기 걸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과 비로소 만나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예술가를 신비하고 신화적인 영웅으로 묘사하는 기존의 낭만적 서술 방식에 작별을 고했다는 점일 것이다. 대신 저자들은 한 편의 점묘화(點描畵)를 그리는 것처럼 촘촘하고 세밀하게 주인공 반 고흐를 묘사한다. 이를테면 화상(畵商)이었던 큰아버지의 소개로 반 고흐가 화랑(畵廊)에 수습사원으로 취직한 뒤의 모습을 서술한 장이 그렇다. 단순하고 소박한 화풍을 선호했던 당시 미술 시장의 트렌드와 달리, 반 고흐는 기이하고 엄숙한 종교화에 집착을 보였다. 고객들은 그를 "촌뜨기 네덜란드인"이라며 경멸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첫 직장이었던 화랑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요즘 말로 반 고흐는 '저(低)성과자 해고 사례'에 해당했던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먼저 직감했던 것도 동생 테오 쪽이었다. 저자들은 반 고흐를 현실 감각 '빵점'이고 패배감에 시달렸던 인물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핀센트(빈센트 반 고흐)의 현실 무시, 압도적인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결심에는 옹고집의 기미가 있었다. 고의적이고 종종 자기 파괴적인 외고집이었다"는 구절이 보여주듯 말이다.

    1888년 고갱에게 헌정했던 반 고흐의 ‘자화상’ 사진
    1888년 고갱에게 헌정했던 반 고흐의 ‘자화상’. /민음사 제공
    원경(遠景)에서 관조하듯이 차분하고 담담한 톤으로 서술하던 책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근접 촬영이라도 하듯이 반 고흐에게 지근거리로 밀착해간다. 문장의 길이도 더불어 짧아지고 책의 속도감은 한층 커진다. 동생 테오가 신혼의 단꿈에 젖고 동료 고갱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동안, 반 고흐는 철저하게 고독 속에 내버려진 채 내면의 붕괴를 겪는다. 하지만 그는 발작 증세에 시달리면서도 '까마귀가 있는 밀밭'과 '자화상' 등 훗날 미술사의 걸작으로 남게 될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가 불후(不朽)의 작가로 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삶이 불패(不敗)였기 때문이 아니라 처절한 패배에도 불굴(不屈)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바라기가 태양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해요. 태양 때문에 더 빨리 시들어버릴지라도 말이죠"라는 동생 테오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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