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공유가 읽은 다음 날, 그 책은 '드라마셀러'

    입력 : 2016.12.24 03:03 | 수정 : 2016.12.26 15:01

    드라마 속 책 광고료 억단위로
    드라마 흥행 성공하면 순식간에 몇만 부 팔려
    출판사 광고 계약 따라 대사·주인공 직업도 바꿔… 읽기 쉬운 책 위주 아쉬워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공유가 낙엽 가득 깔린 캐나다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그의 낭독이 음악처럼 깔리고 여주인공 김고은이 멀리서 달려온다. 책장을 넘기던 공유의 손이 멈추고,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한다. 지난 10일 방송된 tvN 드라마 '도깨비' 마지막 장면이다. 공유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은 김용택 시인이 고른 시(詩) 101편을 모은 필사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였다. 방송 직후부터 책 판매량은 치솟았다. 곧바로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집계한 12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예스24'에서만 10~14일 5일간 1만900여 권이 팔렸다. 책을 펴낸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측은 "드라마 제작사와 간접광고(PPL)를 계약해서 나온 장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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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방송된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공유가 손에 든 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방송 직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 tvN 캡처

    흥행에 성공한 건 광고계약을 한 출판사뿐만이 아니다. 공유가 낭독한 시 '사랑의 물리학'을 쓴 김인육 시인까지 덩달아 덕을 보게 됐다. 2012년 출간된 이 시인의 시집 '잘 자라, 여우'까지 다시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 이에 해당 시집을 출간했던 문학세계사는 지난 19일 시집의 이름을 아예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개정판을 내겠다고 밝혔다.

    출판업계에선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잘 팔리게 된 책을 두고 흔히들 '드라마셀러'라고 부른다. 드라마와 베스트셀러의 합성어다. 드라마 제작사나 출판사 양쪽 모두 간접광고 비용에 대해선 함구하지만, 복수의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2012년 방영된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2013년 방영된 SBS 드라마 '상속자들' 경우는 한 출판사로부터 1억원가량을 받고 간접 광고를 계약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책 한 권만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 해당 출판사의 책 여러 권을 드라마 주요 장면에 여러 번 끼워 넣는 식으로 계약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속자들' 경우엔 소설가 신경숙·김연수, 시인 박연준·김언희 같은 국내 작가 작품부터 파울루 코엘류 같은 해외 작가 소설, '안나 까레니나' 같은 고전 문학까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여러 권의 책이 연달아 등장했다. 한 드라마 PD는 "초기 책 PPL이 배경에 놓인 책장에 책을 꽂아놓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젠 책의 몇몇 문장을 드라마 속 주요 대사로 활용하는 식으로까지 바뀌었다. 갈수록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2014년엔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홍보하는 대행사가 출판사에 제작비 5억원짜리 PPL 제안서를 돌려 논란을 낳기도 했다. 제안서에는 ‘해당 출판사의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섯 번가량 넣을 수 있으며, 드라마 주연·조연의 직업을 해당 출판사 대표나 직원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편집자는 "책 광고를 위해 5억원이나 선뜻 낼 수 있는 출판사는 없어서 듣고 웃어넘겼는데, 그 이후로도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2000만원부터 1억원 사이에 이르는 제안서가 종종 오더라"면서 "대형 출판사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드라마셀러가 독자의 저변을 넓혀줄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PPL이 출판시장을 교란시키고 몇몇 대형출판사와 일부 작가에게만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점은 안타깝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책들이 대체로 가볍고 읽기 쉬운 책에 치중돼 있다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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