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서양 과학은 왜 그렇게 朝鮮에 야박했나

  •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입력 : 2017.01.06 23:45

    '뉴턴의 무정한 세계'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과학과 기술은 가치중립적인가? 필자가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뉴턴 역학은 그것을 낳은 영국 땅에서는 물론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디에서나 참을 담보하는 과학의 보편성이야말로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세계를 제패한 근대 유럽이 가진 힘의 원천이었다.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유럽인은 산업혁명을 이룬 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둔 제국을 경영하며 패권을 키워갔다.

    이렇듯 근대과학사(史)는 런던이나 파리의 시선에서는 찬란한 진보의 서사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베이징이나 에도(도쿄), 한양에서는 어땠을까? 동아시아 3국은 제각각 서양 과학을 접했지만, 그 이야기가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어리둥절함과 반감, 서구의 우월한 물리력에 대한 열등감과 수치심, 그것을 따라잡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영토를 잃었고, 일본은 서구식 근대화에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조선은 서구화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
    '뉴턴의 무정한 세계(정인경)'는 일본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서구 근대과학을 접하게 된 식민지 조선인의 시점에서 세계 과학기술사를 서술하려는 시도이다. 제국주의 지배자들을 통해 이식(移植)된 과학과 기술은 보편적이었지만 중립적일 수는 없었다. 뉴턴의 만유인력과 패러데이의 전자기학 법칙은 어디서나 참이지만, 그 원리를 이용한 수력발전소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해 필요했던 전기를 생산했다. 그렇다면 식민지 조선인들은 서양 과학을 두 팔 벌려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거부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과학이란 한편으로 매혹과 경탄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심과 공포를 자아내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이광수, 염상섭, 박태원, 이상 등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조선이 경험한 근대의 안타까운 자화상을 반영한다. 일제 강점기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인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의 발전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방된 조국의 과학 기술자들은 도입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 '과학기술'이란 경제 발전을 위한 생산력이라는 의미만 남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이란 우리를 둘러싼 자연 세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체계화하려는 활동이고, '기술'이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개념을 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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