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다니구치 지로의 'K'를 떠나보내며

    입력 : 2017.02.18 00:47

    어수웅·Books팀장
    어수웅·Books팀장
    집 책장 제일 아래칸 구석에 꽂혀 있던 만화 'K'를 찾았습니다. 11일 69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죠. 100세 시대에 일흔도 못 채운 타계라면, 아까운 나이 아닙니까.

    요즘 청년 세대에게는 '고독한 미식가'로 익숙한 이름이겠지만, 제게는 'K'와 '신들의 봉우리' '도련님의 시대'의 작가입니다.

    'K'를 펼치니 인쇄일이 1998년 2월 20일로 적혀있습니다. 요즘엔 출판사 세미콜론에서 복간되어 나오지만, 20여년 전인 그때는 시공사 판본이었죠. 누렇게 변한 책을 아직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니구치 지로는 시각적 쾌감과 문학적 향기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 작가였거든요.

    K는 네팔의 마을에 사는 국적 불명의 산사나이입니다. 아마도 K2봉에서 따왔을 이름. 초인적인 육체와 초인적인 기술이 아니라, 삶과 산을 바라보는 겸손한 태도로 전설이 된 사내입니다. 짐꾼인 포터에 가까운 신분이지만, 내로라하는 등반가들이 생명을 구하는 건 K 덕분. 승리보다 패배에서 얻는 교훈, 그리고 푸모리와 마칼루 빙벽을 표현하는 작가의 드로잉 실력에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먹물을 쓰지 않고 만드는 음영과 섬세한 선이 일품이었죠. 에베레스트 초등(初登)을 그린 '신들의 봉우리'는 2005년 앙굴렘 최우수 작화상을 받았고,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와 그의 시대를 재현한 '도련님의 시대'로 일본 최고 만화상 중의 하나인 데스카 오사무 대상을 받았습니다. 요즘 웹툰에서는 찾기 힘든 클래식의 매력이 그 안에 있죠.

    '도련님의 시대'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시대라는 것에 질 수밖에."

    각각의 시대를 지배하는 취향과 지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죽음과 함께, 그의 시대도 막을 내린 것이겠죠. 하지만 문학적 향기와 시각적 쾌감의 결합이라는 이 예외적 매력마저 떠나보내기는 참으로 어렵군요.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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