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인류 지성사 2500쪽… '압축의 마법'으로 요령있게 정리했네

  • 장강명 소설가

    입력 : 2017.03.18 00:16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Ⅰ·Ⅱ'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의 벽돌책' 연재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회에서 다루는 책보다 더 긴 물건을 소개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 같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인 피터 왓슨이 쓴 '생각의 역사'는 1권이 1240쪽, 2권이 1328쪽이다. 외형은 딱 찜질방 목침이다.

    저자는 20세기 지성사에 해당하는 2권(원제 'A Terrible Beauty')을 먼저 써서 유명해졌고, 그 뒤 원시시대부터 19세기까지 철학과 관념의 발전사를 훑는 1권(원제 'Ideas')을 펴냈다. 그래서인지 두 책은 톤이 약간 다르다.

    인물과 에피소드 중심인 2권은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나치 독일을 다루는 장에서 불륜 상대였던 제자 한나 아렌트의 곤경을 모른 체한 하이데거나, 해외 대학의 교수직 제안을 닥치는 대로 수락하고는 어설프게 연봉 협상에 나선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식이다.

    1권은 훨씬 밀도가 높고 날이 서 있다. 신문기자로 일했던 시절 나는 기사 분량을 줄이면 줄일수록 오히려 사건의 본질이 선명해지는 압축의 마법을 여러 번 경험했는데, 이 책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가 아니라 로마 공화정'이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하고, 불교의 화두 수행에 대해서는 '순간적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봤기에 동원한 황당한 명상과 난감한 논쟁'이라고 풀이한다.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Ⅰ·Ⅱ'

    '생각의 역사'는 대단히 지적이고 방대한 저작이긴 하지만, '총, 균, 쇠'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같은 독창적 주장이나 야심은 없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읽어야 할 이유가 된다. 비유하자면 이 책을 읽는 일은 머릿속에 크고 튼실한 서가를 설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머릿속에 난삽하게 쌓여 있던 많은 책을 그 형이상학적 책장에 꽂아 정리하면서 새롭게 맥락과 의미를 깨칠 때의 짜릿함이란! 어떤 생각은 내용만큼이나 놓인 위치도 중요하기에. 다만 유럽인이 만든 책장이라 다소 유럽풍으로 짜여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주제나 분량이 엄청난 만큼 출간에 얽힌 일화도 많다. 1권을 옮긴 남경태 번역가는 아예 몇 달 동안 들녘 출판사 4층으로 매일 '출근'하면서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두 책의 색인을 만드는 데에만 보름이 걸렸다고. 담당 편집자였던 선우미정 현 푸른들녘 주간은 '과연 이걸 누가 읽을까' 고민하면서 작업했다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책은 잘 나갔다. '빅 히스토리'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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