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비극이냐 희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입력 : 2017.04.08 00:39

    타임·워싱턴포스트·아마존 등 '올해의 소설'
    탄탄한 문장, 섬세한 표현… 결혼의 재구성

    운명과 분노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정연희 옮김
    문학동네|608쪽|1만6500원

    선생: 비극과 희극의 차이를 말해봐라.

    학생: 장중함과 가벼움의 차이요.

    선생: 속임수 질문이었어. 차이는 없다. 그건 관점의 문제지.

    인생이라는 연극. 이 소설은 그에 대한 질문이다. 거대한 연극의 복판에 결혼이 있다. 비극 혹은 희극. 같은 내러티브를 통과하면서도 두 배우는 다른 장르를 체감한다. 이 소설은 스물두 살 때 첫눈에 반해 2주 만에 결혼한 남자(로토)와 여자(마틸드)의 얘기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섰고, 기지개를 켜고 허리에 손을 짚은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관통하는 20여년의 삶을 추적하며 사랑과 예술, 거짓과 진실을 캐묻는다.

    이 작품은 2015년 미국에서 출간 즉시 극찬을 받으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워싱턴포스트와 시사주간지 타임, 공영방송 NPR 등 유력 매체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플지(誌)와 인터뷰에서 "내가 읽은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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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제목처럼 소설은 1부(운명)·2부(분노)로 나뉜다. 1부의 주연은 로토. 유복한 집에서 자란 잘생긴 백인 남자. 어디서나 주목받는 그의 삶은 특권이었으나 "혼자 있을 때조차 그는 연기를 했다"는 초반의 진술처럼, 독실한 기독교도인 어머니의 영향에서 빗나가며 방황한다. 각성제를 먹고, 여자를 취하고, 자살을 꿈꾸던 소년은 운명의 중력에 따라 연극에 닿는다. 촉망받는 연극배우였으나 전락한 그는 자신의 절망을 글로 풀어낸다. 마틸드는 그의 극작가로서의 재능을 단숨에 알아본다.

    연극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소설은 희곡적 요소로 가득하다. 소설 중간엔 로토가 쓴 대본이 수차례 등장하는데, 두 사람의 과거·미래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인 동시에 서사에 새로운 활력으로 기능한다. 지시문처럼 등장하는, 두 사람의 결말까지 꿰뚫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대괄호 문장'은 고대 그리스 희곡의 코러스(Chorus·배우 연기에 주석을 다는 배우)를 연상시킨다. 원제(Fates and Furies)가 의미하는 건 그리스 신화 속 '운명의 세 여신'과 '분노의 세 여신'. 로토의 삶이 허망한 죽음으로 끝나면서, 이제 숨겨뒀던 마틸드의 분노가 시작된다.

    훌륭한 아내였던 마틸드는 그러나 로토가 알던 여자가 아니었다. 10대를 쥐처럼 통과한 여자. 가난했고, 대학등록금을 위해 수년을 창녀로 살았던 여자. 로토의 성공을 위해 막후에서 움직이던 여자.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로토가 방황하다 바닷가에 빠져 죽자, 마틸드는 그간 봉인해오던 분노를 터뜨려 수많은 얼간이와 몸을 섞는 등 자기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러자 실존적인 쓰라림이 느껴졌다."

    소설가 로런 그로프
    소설가 로런 그로프

    그러나 마틸드는 단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 "사실 마틸드는 늘 주먹 쥔 손이었으나 로토에게만 편 손"이었을 뿐이다. 로토의 상상 속에서 어머니는 말한다. "제발,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말하지 않는 거짓말 말이지. 날마다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짓밟아 뭉개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그 애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단다.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진실은 거짓인가, 아닌가?

    탄탄한 문장과 섬세한 표현. "달이 추레하게 떠올라 오줌을 싸듯 바다 위에 흰빛을 뿌렸다" 등의 낱개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단문이 소설을 장악한다. 특히 곳곳에서 융기하는 성애의 장면. 첫 페이지부터 밤의 해변가에서 정사를 나누는 두 남녀가 등장하는데, 여자가 어떻게 자신의 위태로운 끈을 옆으로 젖히는지, 남녀가 어떻게 서로의 허리와 미골(尾骨)을 다루는지에 대한 묘사가 잠을 내쫓는다. 전성기를 맞은 이 39세의 여류 작가는 독자를 알고 있다.

    두 사람은 해로(偕老)하지 못했으나,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다. 로토는 결혼에 대해 묻는 친구에게 이렇게 답한다. "끝나지 않는 향연. 먹고 또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것." 마틸드는 나중에 깨닫는다. "결혼은, 수학이었다. 더하기로 예측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결혼은 지수(指數)였다." 그리고 작은 가위가 탁 오므려 닫히는 소리. 헤어짐의 순간이 온다. 희극이냐 비극이냐. 소설 말미에 이르러 작가는 다시 얘기하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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