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동맹에 포위된 섬… 완충의 지혜로 美·中 외교"

    입력 : 2017.04.17 03:01

    [소설가 김훈·송호근 교수 대담]

    송 교수 첫 역사소설 '강화도' 내… 강화도 덕진진서 만남

    김훈 "역사의 풍경 구체적 묘사"
    송 "19세기 후반 '극단적 사고' 140년 지나도 되풀이"

    소설가 김훈(69)과 송호근(6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주말인 15일 강화도에서 만났다. 송 교수는 최근 첫 역사 소설 '강화도'를 내면서 "김훈의 문체를 의식하면서 썼다"고 했다. 이 소설은 19세기 조선 무장(武將)인 신헌(申櫶· 1811~1884)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격변기를 다뤘다. 송 교수는 강화도를 방어하면서 강화도 조약 협상의 실무도 맡은 신헌에 대해 "왜양(倭洋)과 사대부의 척사(斥邪) 사이에 끼어 온몸으로 조선의 심장에 창(槍)이 깊이 박히지 않도록 한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신헌은 무인이었지만 학식이 높고 세계사 흐름도 헤아렸기 때문에 통상 조약 협상을 조선에 유리하게 이끌면서 전쟁도 막았다는 것.

    김훈은 송 교수 소설에 대해 "이념과 논리를 버리고 역사를 '풍경'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의 진실성과 구체성을 위대한 문장으로 그렸다"며 반겼다. 소설은 1876년 일본 해군 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몰려와 통상 수교를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시작한다. '여섯 척의 함대가 일시에 정지했다. 전함들이 뿜어내는 검은 연기가 섬 쪽으로 날아갔다. 강화 해협 부근의 수심과 지형을 살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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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였던 강화도 덕진진에서 만난 소설가 김훈(왼쪽)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두 사람은“19세기 말 강화도에 몰려온 열강의 힘 앞에 무력했던 한반도의 역사가 지금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김훈 '검은 연기'는 망국(亡國)의 비애를 알리는 풍경의 언어였다. 그 말은 순결하고 과장 없이 역사를 관능적으로 느끼게 한다. 강화도는 외적이 쳐들어오면 도망가야 하는 최후방이자, 양이(洋夷)가 몰려온 최전방이었다. 전후방이 함께 있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곳이었다. 소설 '강화도'의 신헌은 (일본 함대를 맞아) 배척과 수용이라는 양극단을 다 받아들이고, 무질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송호근 망원경이 없던 조선군은 '요망색리(瞭望色吏·시력이 좋아 멀리 보이는 물체를 관찰하는 말단 군졸)'를 시켜 일본 전함의 이동을 정탐했다. 요망색리라는 말이 재미있다. 일본 전함을 쫓아가지 못한 채 '기러기처럼 빨리 사라져 잘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할 뿐이었다.

    요망색리가 서양 선박을 보고 이양선(異樣船)이라고 보고했다. '모양이 이상한 배'라는 뜻이다.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이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올라온다'고 한 것은 증기기관이 뭔지 모르니까 그랬던 것이다. 이양선이 조선에 나타난 것은 훨씬 오래전부터였는데 세월이 흘러도 그 배의 실체를 탐구하진 못했다. 초병(哨兵)이나 그 보고를 받은 임금이나 똑같이 뭔지 모르겠다고만 한 것이다. 흑선(黑船)에 올라타 연구하고 배운 일본과 비교할 때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강화도는 동양의 '도(道)'와 서양의 '기(器)'가 맞붙은 곳이고,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상제(上帝)와 천주(天主)가 충돌한 것이다. 우리는 서양의 '기(器)'를 단순히 무기(武器)로만 생각했다. 그 '기'안에 수천 년 역사와 생각이 있다는 것을 해석할 줄 몰랐다. 조선을 지배한 '문(文)'의 정치는 모든 것을 '문'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실학자 최한기는 "문은 허(虛)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은 '극단의 사고'로 문명 충돌을 처리했다. 그런 사고가 강화도 조약 이후 140년이 지나도 우리의 무의식을 구성했다. 아직도 '완충'을 모른다. 촛불과 태극기, 남한과 북한, 북핵과 미군 항공모함 칼빈슨호 사이에 완충이 있는가. 없다. 그러나 생존을 찾는다면 해답은 있을 것이다.

    조선은 중국의 변방이니까, 성리학이 더 완고했다. 사상은 대륙의 중심에서 부드러웠지만 변방일수록 더 교조화됐다. 조선에서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서도 예언한 '대박(大舶:큰 배)'이 바깥에서 와서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날 그 대박은 항공모함 칼빈슨이다. (한반도) 안전 보장과 전쟁이 함께 올 수 있다는 모순을 아직도 우리는 살고 있다.

    조선이 외세를 배척하면서도 수용해야 했던 모순은 오늘날 사드 배치에도 적용된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군사 동맹이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 동맹이다. 우리는 동맹으로 포위된 '섬'이다. 사드를 들여왔다고 이걸 놓고 왈가왈부하는데, 군사 동맹을 포기하자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디로 가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물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안보와 전쟁이 동시에 온다는 김훈 선배의 말이 옳다. 한편 우리와 중국은 역사·문화적으로 한 권역이었다.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가 중국에 '역사적 선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조선은 중국 황제에게 몸에 좋은 약재를 갖다 바치면서 환심을 샀지 않았는가.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협조하는 동반자가 되고, 중화(中華)의 보편성에 기여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한국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들을 특별 대우하는 방법도 생각해봄 직하다. 완충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140년 넘게 외부를 경계하는 사고로 살아왔다. 한반도는 열강이 볼 때 땅값이 비싼 곳이다. 우리는 외부를 자꾸 밀어내 땅값을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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