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소설 검색 엔진, 제가 만듭니다"

    입력 : 2017.04.14 23:30

    [MS 글로벌 공익 프로젝트에 선정된 웨인 드 프레메리 서강대 교수]

    일제강점기 시집 원본 찾으러 와… 책 소장자들에 소주 사주며 연구
    "익숙한 詩 새롭게 보는 법 고민… 김소월 '진달래꽃' 3D 프린팅도"

    "1920년대 시집 3분의 1은 노기정이라는 인쇄인을 통해 나왔어요. 기록에 따르면 노기정은 3·1운동 때 한 번 감옥에 갔고, 1922년 '신생활'이라는 잡지를 만들다 인쇄기를 압수당하고 다시 구속됐죠. 시인도 중요하지만 이런 사람들 없었다면 지금 읽는 시들을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웨인 드 프레메리(44)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교수는 한국 옛 시집의 원본을 찾고 책이 출판되기까지 과정을 탐구한다. 누가 인쇄하고 발행했는지, 어떤 종이를 썼는지, 표지는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등을 조사한다. 시집의 물성(物性)을 통해 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소월·한용운 선생님도 본인 시집의 발행인이었어요. 책 디자인에도 시인의 생각이 담겨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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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웨인 드 프레메리 교수가 옛 지도 형태를 본떠 만든 고은 시선집을 보여주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그가 진행 중인 '문(Mo文oN) 프로젝트'는 지난 2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익을 위해 머신 러닝, AI 등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클라우드 포 굿(Cloud for good)' 지원 대상(세계 9개)으로 선정됐다. 한국 근·현대 문학 자료와 고문서의 글자를 인식해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 지금은 대부분 문헌이 한 장의 이미지 형태로 저장돼 있어 연구자들이 일일이 수만 페이지를 읽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김소월 시 '진달래꽃'에서 '즈려 밟고'라는 말이 다른 책에선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빠르게 검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문학에 특화된 검색 엔진을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옛 시집을 쉽게 접하고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1년간 일했다. "죽기 전에 한국어로 시 한 편 정도는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미국에 돌아가서도 한국어를 조금씩 익혔다. "언어 교환을 하던 한국 친구가 강옥구라는 재미 시인을 소개해줬어요. 그분과 한국 시를 하나둘씩 번역하면서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서울대에서 한국학으로 석사 학위, 하버드대 동아시아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소월 시‘진달래꽃’을 코드값으로 바꿔 3D 프린터로 인쇄한 조형물.
    김소월 시‘진달래꽃’을 코드값으로 바꿔 3D 프린터로 인쇄한 조형물.
    박사과정 중 일제강점기 시집 원본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았다. 도서관에 있을 줄 알았던 시집들은 대부분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고 1년 동안 허송세월해야 했다. "시집 소장자들의 네트워크를 간신히 찾았어요. 소주 사드리면서 '한 번만 보여달라' 부탁했죠. 시집 40여 권과 시에 관한 잡지들을 힘들게 찾았습니다."

    부모님께 소규모 출판사를 물려받은 드 프레메리 교수는 한국 시집과 소설도 여러 권 번역해 출간했다. 하버드 대학원생 시절 만들었다는 고은 시선집 '여지도(Traveler maps)'를 보여줬다. 실끈으로 동여맨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끈을 풀고 여행 지도처럼 4분의 1로 접혀있는 종이를 펴야 한 편의 시가 나왔다. "하버드대 도서관에 있는 한국 옛 지도에서 영감을 얻었죠. 고은 선생님도 '재밌다'고 칭찬해주셨어요."

    그는 "어떻게 하면 한국 시를 색다르게 읽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며 다이아몬드 모양의 조형물을 꺼냈다. 한글 텍스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코드값으로 바꾸고 그 숫자를 3D 프린팅 소프트웨어에 입력해 얻은 결과물이다. "좋아하는 시를 3D 프린팅해서 목걸이나 반지로 만들 수 있어요. 이걸 선물 받으면 원작을 찾아보고 싶어지겠죠? 옛 시를 새롭게 볼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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