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의 弱者, 웹툰의 중심에 서다

    입력 : 2017.04.18 03:02 | 수정 : 2017.04.18 15:16

    [교내 폭력 고발하는 학원물 등장]

    '일진'들의 성장 이야기 벗어나 괴롭힘 당하는 '피해자'에 집중
    안경 벗으면 괴력 생기는 마법 등 판타지적 요소로 극복 과정 표현

    "한창때 아이들이 싸우면서 크는 거지. 왜 일을 크게 만들려고 해."

    '학교 폭력 설문 조사'에 한 불량 학생의 이름이 적힌다. 진상 조사를 벌이려는 담임 교사를 생활지도부 교사가 막아선다. 용기 내 폭력을 고발하려던 피해자는 학교라는 방관자 앞에서 무력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 교사가 둘러앉은 교무실 공기가 무겁게 흐른다. "포옹하고 끝내라"는 주먹구구식 해결 후 가해자는 피해자를 불러 "감히 내 이름을 썼느냐"며 또다시 폭행한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인공은 퉁퉁 부은 얼굴을 매만지다가 학교 옥상에서 투신한다.

    학교 폭력을 미화(美化)한다고 비판받아온 웹툰 학원물의 소재가 변하고 있다. 기존 학원물 웹툰은 불량 학생을 의미하는 이른바 '일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삐뚤어진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 단면을 주로 보여줬다. 음주, 흡연, 상납, 패싸움 등 학교 폭력과 이들의 허장성세를 자극적·선정적인 그림으로 녹여내는 식이었다. 웹툰이 인기 콘텐츠로 부상한 최근엔 학원물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학교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피해자가 전하는 '은밀한 폭력'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 폭력 피해 학생 수는 2013년 9만4000명에서 2015년 3만9000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교내(校內) 폭력 사건 발생 시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정해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심의 건수는 1만7749건에서 2015년 1만9968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 엇갈린 통계는 딱 잘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학교 폭력의 속성을 대변한다. '폭력'과 '장난'의 경계 또한 모호해 바깥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폭력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규정하는 것이다. 웹툰 학원물이 학교 폭력 피해 당사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불량학생에게 괴롭힘당하는 주인공을 그린 ‘소년이여’(오른쪽)와 ‘독고’(왼쪽)의 한 장면.
    폭력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규정하는 것이다. 웹툰 학원물이 학교 폭력 피해 당사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불량학생에게 괴롭힘당하는 주인공을 그린 ‘소년이여’(오른쪽)와 ‘독고’(왼쪽)의 한 장면. /네이버·레진코믹스

    이를 고발하는 웹툰은 '피해자'에게 집중한다. 폭력을 일삼던 '일진물'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발언권을 부여해 '무엇이 폭력인가'를 짚어낸다. 레진코믹스 웹툰 '소년이여'는 학교 폭력을 방관하던 주인공 이용주가 괴롭힘당하던 같은 반 학생이 무단결석하면서 그 '폭력받이'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괴롭힘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도시락 뚜껑을 막 열자마자 슬리퍼를 날려 보내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이유 없이 머리를 때리고, 100원 동전을 쥐여주며 "빵과 우유를 사오라" 명령한다. 격렬히 저항할수록 폭력 또한 더 잔인해져 결국 공포감에 굴복하고 만다.

    '학교 폭력 극복'이라는 판타지

    이 작품들은 학교 폭력을 고발함과 동시에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탑툰 '힙찔이 빙진호'의 주인공 빙진호는 중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한다. 정신적·육체적 폭력의 설움이 몰아칠 때마다 흰 노트에 이들을 향한 욕설과 저주를 퍼붓던 주인공은 우연히 들은 힙합 음악에 빠져들면서 그 분노를 '랩 가사'로 적어내기 시작한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종이 위에 분노를 토하며 다짐했다. 고등학교 가면 절대 눈에 띄지 않겠다고. 평범한 '찌질이'로 남겠다고." 힙합 가수라는 선명한 꿈이 생기면서 학교 생활 내내 움츠러들었던 자존감을 회복해간다는 성장담이다. 레진코믹스 '최강왕따'는 '일진'이 좋아하던 여학생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로 괴롭힘당하던 주인공이 안경을 벗으면 괴력이 생기는 마법에 걸려 '일진 패거리'에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 폭력을 다루는 웹툰은 사회문제를 단순 즐길거리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면서 "웹툰이 '약자'를 조명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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