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대약진운동은 크메르루주 학살보다 20배 더 큰 비극"

    입력 : 2017.04.19 01:34

    [마오 3부작 낸 홍콩대 디쾨터 교수]

    중국 각지방 문서보관소 조사
    "1958~62년 사망자 4500만명은 기근 아닌 대량학살 피해자
    功7過3? 서구는 마오 잘못 이해"

    프랑크 디쾨터
    "인민의 절반을 죽게 내버려 두어 나머지 절반이 그들 몫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낫다."

    중국 인민폐 1위안부터 100위안까지 얼굴을 올리고 있는 마오쩌둥(毛澤東)은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1959년 3월 25일 이렇게 말했다.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간다는 보고를 받은 뒤였다. 최근 번역된 '마오의 대기근'(열린책들)에서 저자 프랑크 디쾨터(56·사진) 홍콩대 인문학 석좌교수가 중국 간쑤성(省) 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문건이다. 그는 중국 각지의 기록보관소에서 나온 자료를 토대로 마오의 중국을 재구성하는 3부작을 펴낸 역사학자. 17일 홍콩대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은 디쾨터 교수는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을 학살한 좌익 정권 '크메르루주'보다 20배 이상 큰 규모의 학살극이 중국 대약진운동 기간에 벌어진 셈"이라며 "4500만명을 숨지게 한 마오쩌둥은 크메르루주의 수장 폴 포트와 견줄 만한 반(反)인도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약진운동(1958~1962)은 마오쩌둥이 '7년 안에 영국을 초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취지로 시작한 공업화와 농업근대화 운동. 그러나 계획경제는 실패하고 기근으로 수천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디쾨터 교수는 그동안 2000만~3000만명 정도로 추정해오던 사망자 숫자를 4500만명으로 늘려잡는다. 중국이 1984년 공식 발표한 2150만명보다 두 배 이상으로 높은 수치다.

    디쾨터 교수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 각 지역 기록보관소를 답사하면서 중국의 기존 공식 발표 기록과 대조해 대약진운동 시기 사망률을 추산했다. 2000년대 들어 일부 기록보관소가 학자들에게 개방됐고 그는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윈난성. "1958년 사망률은 2.2%로 전년 중국 평균 사망률의 2배에 달했다. 이해에만 기근으로 사망한 사람이 43만명에 달했을 것이란 뜻이다. 공식 통계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 4년 동안 고작 8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는 윈난, 광둥, 안후이, 쓰촨, 간쑤, 베이징 등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숫자를 비교 분석해 4500만이라는 추정치를 내놨다. 고문을 받다 죽거나 약식 처형된 희생자만 최소 250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보통보다 모를 더 촘촘하게 심은 ‘배게 심기 농법’. 하지만 쌀 생산량은 급감했고 5년 사이 약 4500만명이 숨졌다. 이 중 250만명은 처형됐다는 게 디쾨터의 주장이다. 1958년 8월 톈진 교외를 시찰하고 있는 마오쩌둥.
    보통보다 모를 더 촘촘하게 심은 ‘배게 심기 농법’. 하지만 쌀 생산량은 급감했고 5년 사이 약 4500만명이 숨졌다. 이 중 250만명은 처형됐다는 게 디쾨터의 주장이다. 1958년 8월 톈진 교외를 시찰하고 있는 마오쩌둥. /열린책들

    정보 공개는 제한적이고 사망자는 추정치에 그치지만, 디쾨터는 각 지역 기록보관소에서 숫자로는 알 수 없는 참혹한 생활상을 찾아냈다. 후난성에서는 시체를 비료로 쓰려고 솥에서 삶았고, 산둥성의 한 어머니는 아들을 팔아 푼돈인 1.5위안과 찐빵 네 개를 얻었다. 그는 한 해 사망률이 10%를 넘긴 56개 현 이름도 제시한다. '기만과 공포가 결합해 대량 살상을 낳은 참상의 현장'이었다.

    "대약진운동 실패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대약진운동은 중국 현대사를 바꾼 터닝포인트였죠. 서구에서는 레닌과 스탈린을 신화화하진 않지만 마오쩌둥에겐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도 해요. 덩샤오핑이 내린 '功7過3'(마오의 공이 7, 과가 3) 평가가 영향을 미쳤겠지요. 서구에서 대부분 마오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책을 썼습니다."

    국문판과 영문판 모두 책 이름은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그는 책 이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대기근이란 표현이 자주 쓰이고 저도 썼지만 사실 어폐가 있어요. 자연재해 때문에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당 간부들이 '음식'을 무기로 일할 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아이들을 솎아냈다는 '살인행위'를 느끼긴 어렵습니다. '인종청소(genocide)'나 '대량학살(mass murder)' 같은 표현이 정확합니다."

    디쾨터는 중국을 연구하려면 기록보관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후 비밀 해제됐던 기록물 일부가 다시 사라졌다는 말도 들려요. 그러나 중국은 거대한 나라고 그만큼 기록보관소도 많아요. 자료 수집 당시 여러 기록보관소를 돌아다녔는데 외국 학자가 거의 없었어요. 눈치 보지 말고 시도해보세요(Don't be shy and try). 그게 마오에 대한 신화화를 막고 당시 중국 모습을 확인할 길일 겁니다." 그는 다음 책으로 스탈린, 김일성, 프랑수아 뒤발리에(아이티) 등 8명의 독재자를 분석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크 디쾨터

    프랑크 디쾨터는 1961년 네덜란드 림뷔르흐에서 태어났다. 1990년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연구대학(SOAS)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6년부터 홍콩대 인문학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대 중국이 공개한 기록보관소 자료를 토대로 ‘마오의 대기근’ ‘해방의 비극’ ‘문화 대혁명’ 3부작을 펴냈다. ‘마오의 대기근’은 2011년 영어 논픽션을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저술상 ‘새뮤얼 존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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