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세력, 한국 건국과 민주화에 앞장섰다"

    입력 : 2017.04.20 03:01

    ['군자들의 행진' 펴낸 이황직 교수]

    "1919년 '파리장서운동' 벌인 뒤 광복 직후 새 국가 건설에 활약
    4·19 교수단 시위 이끈 인물도 임창순·이상은 등 유교 계열"

    동아시아의 유교(儒敎) 전통은 민주주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황직(48·사진)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사회학)는 광복 전후에서 1960년대까지 건국과 민주화 과정에서 유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난 6년 동안 추적했다. 700쪽 가까운 연구서 '군자들의 행진'(아카넷)은 그 결과물이다. 책 제목은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의 '성자들의 행진'에서 따 왔다. 19일 만난 이 교수는 "독실한 청교도 신자들이 영국의 근대 혁명을 이끌었음을 밝힌 왈저의 연구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유교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황직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이진한 기자
    학계에서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미답 분야다. "전국에 흩어진 자료를 찾아 인물 한 명씩 새로 분석하는 가내수공업적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한말 의병 전쟁을 주도했고 근대적 민족주의를 받아들인 유교인들은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독립 청원서를 전달하는 '파리장서운동'을 벌였다.

    이들과 그 후학들은 광복 직후 새 국가 건설의 중추 세력으로 활약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유교인들은 김창숙과 정인보를 중심으로 '유도회총본부'로 결집했고, 여기엔 의병 전쟁과 독립운동 참여 세력의 후손, 아나키스트 세력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임정 봉대(奉戴) 운동과 통일국가 건설 운동 등을 벌였다.

    6·25전쟁을 거치며 피해를 보고 분열까지 겪은 유교계는 김창숙이 주도한 '유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민주화 운동 전면에 나서게 된다. 1960년 4·19혁명의 흐름을 바꿔 놓은 4월 25일 교수단 시위를 주도한 세력이 바로 이 네트워크였다는 것이다. 임창순(성균관대), 권오돈(연세대), 이상은(고려대) 등 유교 계열 학자들이 시위의 주요 참여자였다. 이 교수는 "당시 교수단 시위에는 정치 시스템을 이름에 맞게 바로잡는다는 정명론(正名論), 패덕한 군주를 내쫓는다는 방벌론(放伐論) 같은 유교적 개념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유교 네트워크의 인물들은 4·19 이후 진보 정치 운동에 나섰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고, 1965년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재경 유림단 성명'을 발표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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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4월 25일 서울 시내에서‘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대학교수들. 이황직 교수는 4·19혁명의 흐름을 바꿔 놓은 이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유교 계열의 학자들이었다고 분석한다. /조선일보 DB
    유교계의 이런 활동이 왜 그동안 잊혔던 것일까? 이 교수는 "유교의 중요 인사 중 상당수는 6·25 때 사망하거나 납북됐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유교 자체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한학 연구로 역할이 축소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보은의 유림 집안 출신인 이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종교를 묻는 설문 조사에 혼자만 '유교'라고 손을 들 때는 민망했지만, 1987년 대학 입학 이후 '이미 유교적 가치가 내재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시위에 나서 돌을 집어 던지려다가 '전경이 다칠 수 있으니 차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집에까지 가져온 적도 있었다.

    유교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여전히 권위주의적 요소가 많이 있는 종교가 아닌가? 이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유교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종교의 보수적 요소와 비판적 요소 중에서 우리가 유독 유교에 대해서만 전자를 주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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