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희극에서 출발해 비극으로 가는 중"

    입력 : 2017.05.15 03:03

    [오바마 추천 최고의 책 '운명과 분노' 작가 로런 그로프 인터뷰]

    詩的 '산문의 거장'으로 꼽혀
    "신분이 다른 남녀 결혼 통해 사회 양극화와 여성 혐오 비판"

    소설가 로런 그로프(Lauren Groff·39)는 당대 미국 문학에서 젊은 나이에도 '산문(散文)의 거장'(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으로 꼽힌다. 그로프는 2008년 작가 활동을 시작해 세 권의 장편과 한 권의 단편집을 냈다. 두 번째 장편 '아르카디아'는 2012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들어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그로프의 세 번째 장편 '운명과 분노'를 '올해 최고의 책'으로 추천해 화제가 됐다.

    당시 그로프는 트위터를 통해 "까무러쳤다가 깨어났다. 이제 은퇴해도 되겠다"고 기뻐했다. '운명과 분노'는 부유층 남자와 빈곤층 여자의 결혼을 소재로 삼아 운명과 존재의 관계를 신화와 비극의 분위기 속에서 우아한 문체로 다루면서도 소득 양극화와 여성 혐오가 초래한 현실 문제를 조명했다. 최근 '운명과 분노'(정연희 옮김·문학동네) 국내 출간을 맞아 그로프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로런 그로프는“언젠가 한국을 방문하는 게 꿈인데, 종이로 된 내 작은 분신들이 나보다 먼저 그 기회를 갖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로런 그로프는“언젠가 한국을 방문하는 게 꿈인데, 종이로 된 내 작은 분신들이 나보다 먼저 그 기회를 갖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Megan Brown·문학동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운명과 분노'를 좋아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바마를 만난 적이 있나.

    "슬프게도 (그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정말 고맙게도 그는 내게 친필 편지를 보내줬다. 마틸드(소설의 여주인공)가 아주 흥미롭고 독특한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독서광으로 소문난 오바마를 미국 언론에선 'Reader-in-chief'(책 읽기의 통수권자)라고 부른다. 대통령의 독서가 국민에게 영향을 미쳤나.

    "그랬기를 바란다! 오바마가 공감 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애서가(愛書家)였다는 것이다. 그는 깊이 사유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연히 미국인의 절반은 그의 영향을 받았기를 바란다."

    ―소설 '운명과 분노'는 그리스 신화와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통치하는 미국의 현실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 선거 기간에는 우리 모두 희극이라고 생각했다. (끔찍하고 믿을 수 없게도) 그가 집권한 현재는, 당연히 비극이다."

    ―'운명과 분노' 전반부에 미국의 중산층 붕괴와 소득 양극화에 대한 분노를 일부러 깔아놓았는가.

    "그렇다. 이 책에서 분노는 자신들의 탐욕스러운 손에 최대한의 돈과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사회 규칙을 제멋대로 바꾸고 편법을 저질러온 소수의 제멋대로 선택된 집단에 대한 분노다. 나는 국립공원 같은 공동 소유의 재화를 유권자들로부터 갈취한 사기꾼과 그가 속한 정당의 속임수에 경악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 쓴 희곡 중 '애꾸눈 왕'의 제목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 채 착시 현상이나 확증 편향에 빠지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암시하는가.

    "그렇다. '애꾸눈 왕'은 16세기 네덜란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에라스뮈스의 말에서 유래한 영어 속담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박이가 왕이 된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미국에서 특권을 지니고 태어난, 부유한 백인 남성 같은 일부 계층은 나머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일 때 이미 한쪽 눈을 먼저 뜬 채 태어난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 혐오주의'가 논란이 됐다. '운명과 분노'도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았나.

    "나는 페미니즘이 특정한 트렌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남녀가 본질적으로 평등하고, 사회에 여성의 평등을 박탈하는 구조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세상에는 양성평등을 믿는 (남자를 포함한) 페미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여성 혐오자 두 부류밖에 없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탈(脫)진실의 시대'에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언론인은 강력한 진실을 직접 전달하는 데 탁월하지만, 소설가는 우회적으로 진술한다. 소설도 언론만큼 강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저항해야 하고,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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