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시작한 '베이비부머', 문화를 바꾸다

    입력 : 2017.05.18 03:01 | 수정 : 2017.05.18 07:38

    [靑春 돌아간 듯 인생 즐기는 5060]

    문화 소비층으로 떠오르며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서 조명
    TV선 중년 로맨스 내세우고 은퇴자 자유여행객 겨냥한 책도
    "능동적인 新중년층의 등장"

    "새삼 이 나이에 질투라니… 나쁘지 않은 감정이네."

    현재 방영 중인 MBC 주말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대기업 회장 박성환(전광렬)은 마음에 두고 있는 여가수 유지나(엄정화)와 마주앉아 이렇게 말한다. 질투의 대상은 자신보다 스물여섯 살 어린 연적(戀敵). 하지만 그는 여유를 잃지 않고 애정 공세를 펼친다. 유지나에게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나, 우리 나이에"라고 말하는 모습엔 자신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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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행을 떠난 오권태(왼쪽)·배은임씨 부부가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팔다리를 한껏 벌리며 뛰어오르고 있다. '58년 개띠' 동갑내기인 오씨 부부는 2014년 세계 일주를 시작해 1년간 44개국을 여행했다. /오권태씨 제공
    57세의 전광렬이 연기하는 박성환은 극 중 60세 전후다. 아들뻘과 경쟁하는 그의 로맨스는 젊어진 5060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의 세대 구분으로는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지만 요즘 5060세대는 청춘으로 돌아간 듯 인생을 즐기고 개성과 감정을 표현한다.

    방송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계속 내놓고 있다. KBS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은퇴자로 나오는 강석우는 한 달 용돈이라며 30만원이 든 체크카드를 건네는 아내의 모습에 졸혼(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따로 사는 것)을 꿈꾼다. 중견 스타들의 로맨스를 내세운 SBS의 리얼리티 예능 '불타는 청춘'은 작년 출연자 김국진(52)·강수지(50)가 실제 연인으로 발전해 화제가 된 데 이어 16일에는 '왕언니' 서정희(57)의 출연을 예고했다.

    숫자로 본 한국의 베이비부머
    이런 현상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현재 54~62세인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2010년 은퇴를 시작해 이제 '막내'가 은퇴 연령(55세)에 근접하고 있다. 앞 세대에 비해 구매력에 시간적 여유까지 갖게 된 이들이 문화의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가 이들을 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패션 분야에서는 옷 잘 입는 '멋진 노년'이 주목받는다. KBS가 올 초 방송한 '엄마의 소개팅'에서는 개그맨 박나래의 엄마 고명숙(59)씨 상대로 부산 '남포동 꽃할배' 여용기(64)씨가 출연했다. 그는 남성복 편집숍을 운영하며 자기 옷차림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멋쟁이로 유명해졌다. 작년 남성 패션지 GQ가 남성복 브랜드 브로이어와 함께 독자 대상으로 진행한 멋쟁이 선발대회에서는 바리스타 전만수(61)씨가 20대 청년들과 겨뤄 2위를 차지했다.

    '나이 치고 잘 입은' 정도가 아니라 젊은이들과 나란히 비교해도 돋보이는 스타일이 핵심이다. 이들은 복사뼈 길이의 폭 좁은 바지, 체크무늬가 큼직한 재킷처럼 트렌디한 옷을 즐겨 입는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bonpon511'이라는 이름으로 발랄한 커플룩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60대 부부가 45만명 넘는 팔로어를 모으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출판계에서는 은퇴 베이비부머를 겨냥한 여행책이 잇따라 나온다. 은퇴자들의 여행이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 투어에서 자유여행으로 바뀌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작년 출간된 '세상을 향해 권태를 쏘다'는 은퇴 베이비부머인 오권태씨 부부가 함께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다. 오씨 부부는 여행을 준비하며 만난 동료들과 함께 마을버스를 인수해 배편으로 부친 뒤 그 버스로 남미를 여행하고, 러시아에서는 열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올 3월 나온 '할매는 파리 여행으로 부재중'은 패키지 여행에 실망해 자유 여행을 시작한 60대의 프랑스 여행기다.

    데님 셔츠에 니트 넥타이를 맨 전만수씨.
    데님 셔츠에 니트 넥타이를 맨 전만수씨. "직장다닐 때는 멋 부릴 기회가 없었다"는 그는 은퇴 후 바리스타로 일하며 숨겨왔던 끼를 드러내고 있다. /전만수 인스타그램
    베이비부머는 청바지와 통기타의 시대였던 1970~8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이들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주도하며 현대적인 도시 문화를 체득했고, IT·디지털 문화에도 익숙하다는 점에서 선배 세대와 구별된다"고 했다.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新)노년층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백찬규 애널리스트는 올 초 펴낸 '젊은 노인의 탄생'에서 "고도성장기에 일군 부와 사회적 영향력을 기반으로 베이비부머가 새로운 수요 주체로 일어설 것"이라며 "베이비부머가 움직이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다.

    ☞베이비부머

    출산율이 급증하는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세대. 한국에서는 6·25 직후 신생아가 늘어난 1955년부터 가족계획정책이 본격화된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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